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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현미경,눈으로 볼수없던 ‘나노세계’ 열었다

이재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6.28 21:58

수정 2009.06.28 21:58



테라비트급 하드디스크, 차세대 반도체 소자, 휴대형 가전제품….

미래 정보기술의 총아로 불리는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극소형화’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아주 작은 크기까지 볼 수 있게 됐다. 사물의 원자구조까지 볼 수 있게 도와주는 ‘투과전자현미경(TEM·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y)’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안재평 박사는 28일 “미래 과학기술 분야에선 극미세 영역을 지배하는 국가가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TEM 때문에 원자 단위의 물질구조, 화학성분, 전자결합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TEM은 이렇게 탄생했다

현미경을 사용하는 목적은 딱 한가지다. 사물을 확대해 보기 위해서다. 사람은 사물에 반사된 빛을 눈으로 감지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사물’과 ‘빛(광원)’, 그리고 ‘눈’이다.
현미경은 이 중 광원을 조절해 사물을 확대해 보여주는 장치다.

초기 현미경은 우리 눈과 마찬가지로 가시광선만을 광원으로 이용했다. 다른 점은 렌즈의 굴절을 이용해 빛을 꺾어준다는 것. 빛이 평행하게 오면 사물이 그대로 보이지만 빛을 꺾어주면 확대해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렌즈의 굴절률을 이용한 광학현미경은 1930년대 이르러 사형선고를 받았다. 더이상 렌즈를 깎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그 이후 과학자들은 가시광선 대신 적외선이나 자외선, 엑스레이, 전자 등 파장이 다른 광원을 이용하려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1932년 가시광선 대신 전자를 광원으로 사용하는 TEM을 탄생시켰다. TEM이 더 작은 세계의 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전자현미경, 원자까지 본다

광학현미경은 유리의 굴절률로 빛을 꺾어주지만 TEM은 전자석의 자기장을 이용해 광원인 전자를 꺾어준다. 파장을 짧게 만드는 것은 전자를 쏘는 전자총의 가속전압을 높이는 것으로 가능하다.

가속전압을 20만볼트(V)로 높이면 2.0옹스트롬(Å=100억분의 1m)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나노미터(㎚·1㎚=10억분의 1m)로 환산하면 0.2㎚짜리 미세먼지(원자 수준)를 보는 것이다. 이 가속전압은 현재 150만V 이상까지 올릴 수 있다.

연구자들은 또 렌즈(전자석)를 이용해 TEM 성능을 높이고 있다. 이는 전자석의 코일을 얼마나 균일하게 감을 수 있는지가 성능 향상의 관건이다.

이 같은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최근 개발한 것이 ‘CS-corrected TEM’이다. 이는 볼록렌즈 밑에 오목렌즈를 하나 더 붙이면 오차가 줄어든다는 것에 착안해 만들었다. 0.5Å까지 볼 수 있는 CS-corrected TEM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그리고 KIST만 보유하고 있다.

안재평 박사는 “현재 도입된 장비로 보통 0.7Å 수준까진 관찰이 가능하다”면서 “같은 기계를 사용해도 운용자의 실력에 따라 분석능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엔 엑스레이를 광원으로 이용한 현미경을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도체에서 생명공학까지 활용

TEM은 주로 어떤 일을 할까. 우선 반도체 분야 쓰임새가 가장 많다.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기술은 나노수준의 정밀도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반도체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극미세형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설계를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TEM이 없으면 상용화가 안된다. 새롭게 만들려고 하는 반도체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TEM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와 재료 등의 분야에서도 고성능 현미경은 유용하다. 수소연료전지를 만들어내는 과정 등 상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서다. 리튬2차전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앞으로 TEM 등 첨단 현미경이 각광받는 분야는 역시 '나노'와 '바이오'이다. 작은 것만이 연구대상인 나노 분야에서 어떤 재료의 전기적, 물리적, 화학적 성질은 원자의 주기나 강도 등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원자를 볼 수 있는 TEM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또 생체활동의 가장 기본인 단백질의 구조를 파악해야 하는 바이오 분야도 TEM이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뇌과학 분야에서도 TEM의 활용도 높다. 안재평 박사는 “TEM은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다양한 원천기술을 확보하는데도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conomist@fnnews.com 이재원기자

■사진설명=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안재평 박사가 전자현미경(TEM)의 기능과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용어설명/테라비트(terabit)=10조 비트(정보량의 최소 기본 단위)를 말한다.
1테라비트 메모리 안에는 콤팩트디스크(CD) 1500장 이상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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