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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입국의 그늘,밀수 밀화] <38> 어창에 실린 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6.30 16:45

수정 2009.06.30 16:45



고깃배 어창(魚艙)은 물고기나 조개류를 싣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오징어잡이 배 어창에 오징어가 아닌 뱀장어가 실려 있어도 이상할 텐데 뜻밖에 징그러운 뱀이 가득 들어차 있다면 보통 놀랄 일이 아니다.

1995년 12월 초순께 부산 남항 방파제 부근에서 세관감시정이 지나가는 한 어선을 검문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부산 영도에 자칭 ‘김 독사’라고 뱀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중간상인이 있었다. 그는 전국을 무대로 오랫동안 뱀장사를 하다 보니 나름대로 뱀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지만 환경변화 및 남획으로 인해 국내산 뱀이 줄어들다 보니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중국산 뱀이 밀수돼 시장에 유통되는 바람에 도저히 가격 면에서도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 그래서 위기감에 한 발짝 늦긴 했지만 중국산 뱀을 밀수하기로 마음먹고 조직 건설에 나섰다.

마침 부산 충무동에서 17t짜리 오징어 채낚기 배를 가진 서모 선장이 건강이 좋지 않아 배를 놀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그를 자갈치에서 만나 ‘도원결의’를 했다. 공해상에서 밀수뱀을 실은 중국선박과 접선, 성공하면 항차 당 300만원을 주기로 합의까지 했다.


이에 따라 서 선장은 고향 후배 1명을 태워 ‘김 독사’와 3명으로 된 뱀 밀수단 선장이 돼 그해 9월 17일 경남 남해도의 미조항에서 첫 출항했다. 그러나 첫번째는 공해상에서 접선실패로, 두번째는 기상악화로 성공을 못했다. 드디어 세번째인 12월 7일, 장장 10시간을 항해해 약속한 해상에서 약 30여분간 조업을 하는 척하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라이트를 켜면서 달려오는 중국어선 한 척을 발견했다. 이들은 그 배와 접선해 뱀 108상자를 건네받아 어창에 가득 싣고 만선의 돛을 단 기분으로 부산 남항으로 내달렸다.

밤새워 해상순찰을 한 세관감시정이 교대를 하기 위해 뱃머리를 돌려 서서히 귀항을 하려던 참에 곁을 지나가는 오징어 채낚기 선박을 발견했다. 최소한 10여명의 선원이 타야 할 이 선박에 거의 선원이 없었다. 그래서 망원경으로 세심히 살펴보니 밤새 조업을 했다면 갑판위에 물기가 있어야 할 것인데 작업을 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이 배는 무슨 용무로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밤바다를 다니다가 아침에 입항하는 것일까? 의혹이 짙어지면서 배의 진로를 관찰하다가 결국 부산 남항 입구에서 배에 바짝 다가서 정선시켰다.


그때 세관원의 눈에 누군가 먹다 버린 중국산 빈 맥주 캔이 갑판 위에 몇 개 나뒹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게 결정적인 단서가 돼 김 독사의 목덜미를 꼼짝 못하게 휘어잡고 뱀이 가득한 어창을 열었다.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

■사진설명=중국에서 밀수입한 뱀이 망사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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