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34. 예술가여 맨발이 돼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8.13 16:24

수정 2009.08.13 16:24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감성 사이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감성만 있고 이성이 없으면 뼈대 없이 만들어진 모래성과 같고 이성만 있고 감성이 없으면 골조만 앙상하게 드러난 건물이 될 수 있다. 감성 없는 이성은 독창적이지 못하고 이성 없는 감성은 설득력이 부족해진다. 예술은 모순관계가 서로 공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지닌다.

익숙한 것과 즉흥적인 것, 이성과 감성,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를 이루기 위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강자들을 연구해야 한다.
적어도 그들은 예술이란 이름 아래 클래식한 우아함을 놓치지 않으며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다. 술에 취해 흔들리지만 그렇다고 고삐가 완전히 풀리지도 않는다. 미술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다. 그래서 음악과 미술은 쌍둥이처럼 닮은 데가 있다.

미술에 비해 사람들은 쉽게 음악에 반응한다. 웃고, 울고, 두려워하고, 분노한다. 위트와 감각을, 좋으면 할 수 있는 지극히 감성적인 영역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음악은 지극히 육체적인 트레이닝이다. 피아노를 치기 위한 손가락, 바이올린을 켜기 위한 팔, 플루트를 불기 위한 목 근육 등 필요한 근육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리듬과 박자에 맞춰 적절한 액션을 순발력 있게 취하지 못하면 불협화음이 된다. 그래서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청중 역시 반복된 듣기 연습을 통해 기대치가 높아진다. 어디 틀린 곳이라도 나오면 예외 없이 눈살을 찌푸린다. 음악이란 예술은 부지런한 근육질을 선호한다. 그럼 그 근육질 가운데 누가 천재가 되고 누가 그렇지 못하는 것일까.

저 멀리 작은 원두막이 보이는 풍경을 따라 피리를 든 소년이 걸어가고 있다. 잔디가 한껏 피어 오른 길을 맨발로 걸으며 땅의 온도와 잔디의 부드러움을 느낀다. 간지럽다. 간혹 가다 깜짝 놀라게 하는 뾰족한 돌맹이가 있으면 집어 던진다. 혹시 뒤에 오는 친구가 맨발로 걷다가 다칠까봐 저 멀리 던진다. 간혹 들리던 매미소리가 오늘따라 더 요란하다. 그 요란함에 발걸음을 종종거리며 박자를 맞춰본다. 크게 뛰었다가 다시 종종걸음으로, 그리고 다시 크게 뛰고…. 그 뒤를 운동화까지 챙겨 신은 소년이 열심히 뒤쫓기 시작한다. 맨발의 소년을 따라잡고 싶어서다. 빨리 더 큰 보폭으로 어느덧 맨발의 소년을 따라잡는다. 그러나 소년은 빨리 집에 돌아가 피리 부는 연습을 할 작정으로 뒤도 안 돌아 보고 달려간다.

자, 다시 묻는다. 누가 천재가 될까. 맨발 소년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운동화를 신은 소년의 뜀박질에 동승할 것인가. 어떤 선택이 좋은지는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살펴볼 일이지만 필자는 맨발 소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렇다고 부지런히 달려가는 소년의 열망과 의지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맨발로 뛰면 되잖아요!’라고 절충안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감각과 관련된 경험이라는 것은 속도의 지배를 받는다.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가가 중요한 변수다. 단위시간 당 생각과 감각의 양이 경험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근육질의 테크니션 중에서 진정한 음악가를 찾아 낼 수 있는 기준이 되는 부분이다. 감각의 작은 지점까지도 환기시키며 그것과 교감하고 표현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그를 예술가라고 부른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이 들어설 옛 기무사터에서 열리고 있는 2009 아시아프(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 미술축제) 현장을 다녀왔다. 700여명이 넘는 젊은 작가들이 참여한 아트페어였기에 미술시장의 최신 경향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행사였다. 거기서 느낄 수 있었던 아시아 특히 한국 청년작가들의 경향이란 안타깝게도 실험에 대한 두려움과 최신경향에 대한 정보나누기였다.

4년 전 상하이 비엔날레에 나왔던 한 작품을 연상시키는 사진작품을 시작으로 모 옥션에서 대단히 인기를 끌었던 작품의 모티브를 차용한 작품, 한 독일 작가의 기법을 따라 한 작품, 구성을 흉내 낸 작품, 여러 상업적인 요소를 조합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지루하게 반복되는 이어달리기였다. 이러한 동어반복은 맨발로 걷기를 두려워하고 빨리 달려 앞서나간 사람 따라잡기에 급급한 곱게 차려 입은 소년의 호흡 가쁜 뜀박질을 연상시켰다. 대다수의 작가들이 작가의 가치가 아닌 상품화된 장식물을 판매하고 있었고 기말 리포트 짜깁기 하듯 여기저기서 판매에 유리한 요소들을 조합하고 있어 어떤 것이 그들의 목소리인지 헷갈렸다. 한국미술의 폭과 가능성이 아닌 위기가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이용백 작가의 작품이 떠올랐다. 아시아프에 참여한 많은 작가들에게서 부족한 면을 이용백 작가의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피에타란 거대한 조각작품과 엔젤솔저라는 영상, 사진작업, 그리고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플라스틱 피쉬 회화작업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프레임으로 그의 스펙트럼을 담아내기란 불가능하다. 화가도 아니고 영상작가도 아니고 조각가도 아니다. 대신 이 모두가 될 수 있는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 후배들이 본받아야 하는 여러 선배 작가들 중 특히 이용백 작가를 표본으로 삼은 이유는 이 밖에도 더 있다. 일관된 주제를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해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낯선 시각언어와 연출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 때문이다. 작업은 이미지의 변용이 아닌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표피적인 고민에 머물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철학적 논리도 갖춰야 한다. 그 논리는 감각적인 연출을 통해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으로 전달될 것이다. 이러한 경험과 가치는 결코 보기좋게 프레임된 캔버스와 예쁘고 깔끔하게 칠해진 껍질로부터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특별해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맨 살로 천천히 한 발 한 발 새로운 감각을 터득하고 실험하면서 나갈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진정한 미술시장의 호랑이는 쉽게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가시밭길일지라도 맨발로 걸어라. 후배들이여! 이용백이란 선배도 그 길을 맨발로 걸어 왔다.


/milklee@gmail.com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사진설명=이용백의 HD 비디오 '엔젤솔저 2'. 꽃으로 꾸며진 군복을 입은 엔젤솔저가 꽃 숲 사이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새소리가 멈추고 다시 걸음을 멈추면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10분짜리 동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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