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검찰의 표상으로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를 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죄율 99%, 금권정치를 차단하는 최후의 보루,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는 법대로’ 등 그야 말로 검찰이 추구해야 할 거악(巨惡) 척결의 대명사라 할 만합니다.
김준규 총장의 취임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2개월여 넘게 계속된 검찰 지휘부 공백사태가 해소됐습니다. 국가 최고 사정기관의 총수 부재라는, 극히 우려할 만한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김준규호’의 앞날은 간단치 않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빚어진 편파수사 논란,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총장 후보 낙마 과정 등에서 검찰에 대한 신뢰는 크게 실추됐고 위상 역시 추락한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신임 김 총장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예전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김 총장의 부담, 내지 책임감의 무게 역시 어떤 총장 때보다 무거울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지금까지 검찰을 향한 불신의 큰 갈래는 ‘법’과 ‘양심’에 중심추를 놓기보다는 더러 정치권력의 풍향 등에 따라 흔들리며 보복수사, 표적수사, 편파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심재륜 전 고검장이 경계한 바와 같이 수사로 전부 또는 많은 것을 잃게 되는 수사대상자의 고통을 망각한 채 반복 소환, 가혹행위, 인격모독, 압박용 계좌추적, 회사신용 실추용 압수수색 등을 했다는 시각도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다른 무엇보다 지켜야 할 가치가 큰 것입니다.
현행법상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고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긴 하지만 준사법기관으로서 검사 개개인에게 독립된 관청 지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검찰총장 임기 2년을 법률로서 보장하고 있는 것은 외풍에 휘둘리지 않는 검찰상 정립을 위한 취지일 것입니다.
따라서 검찰이 독립적인 판단에 의해 수사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자 검찰을 검찰이게끔 하는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 같은 상식이 대형 게이트 수사 등에서 의심받는 것이 결국 검찰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나무가 단단히 서 있으면 잎사귀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갈대처럼 흔들리면서 ‘바람아 불지마라’라고 하지는 않는다”고 한 지난 17일 국회 인사청문회 때의 김 총장 말이 앞으로 검찰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합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는 순간부터 이후 불기소 처분을 받든, 기소됐으나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든 결과에 관계 없이 사실상 비리 혐의자, 또는 비리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마련입니다. 이로 인해 수사 대상자는 회복하기 힘든 고통을 받게 된다는 점은 명약관화합니다.
그렇다면 공명정대하고 엄정한 검찰권 행사는 부정과 비리 척결이라는 검찰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되 이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과 함께 철저한 증거 위주의 수사를 포함한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도쿄지검 특수부 출신으로 1980년대 검찰총장을 지낸 이토 시게키는 록히드 사건 재판 진행 중 검찰이 견지해야 할 자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지요. “검찰은 ‘국민의 마음에서’ 매와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회의 움직임, 경제의 흐름 등을 응시할 때에 검찰이 맞붙어 싸워야 할 ‘거악’의 희미한 윤곽이 떠오를 것이다”
김 총장께서 앞으로 정의로운 검찰상 정립을 위해 여러 구상을 하고 있으실테고 특히 논란의 중심에 있는 중앙수사부 개편 방안 등이 구체화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김 총장께서 “검찰 개혁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변화에 있다”고 강조했다시피 검찰권 운용의 주체가 어떤 의지를 갖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검찰의 미래는 달라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거악척결에는 물러섬 없이, 일반 국민에게는 따뜻한 검찰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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