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지 [한국의 미를 말하다] 구로다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0.22 11:29

수정 2009.10.22 11:29


얼마전 일본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서울지국장 겸 논설위원으로부터 책 한권을 건네 받았다. 제목은 ‘맛있는 수다-한·일음식 이야기’.

책속에는 한국에서의 기자 생활도 어언 30년이 돼 간다는 인사말과 함께 책에 대한 내용이 적힌 편지가 들어 있었다. 이제껏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느꼈던 한국음식과 문화에 대한 단상들을 자신이 직접 한글로 쓴 것이라고 했다.

구로다 지국장이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1년전. 일본에서 도쿄대 다음으로 명문인 교토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그는 1978년에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으로 유학을 왔다. 이후 일본 교도통신 서울특파원과 지국장을 거쳐 현재까지 산케이신문에 몸을 담고 있으니, 기자생활 44년중 30년 가까이를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

그는 그런 면에서 누가 뭐래도 한국을 너무나 잘 아는 친한인(親韓人)이다.
가끔 일본 극우 인사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한국을 떠나지 않고 그토록 오랫동안 살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사랑의 증거가 아닐까. 어떤 한 사람이 외국에서 30년을 살면 그 나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가 궁금하다. 특히 그는 외신기자로 또 한국 격동의 세월을 함께한 역사의 기록자로 그동안 보고 느낀 이야기가 오죽 많겠는가.

구로다 지국장은 ‘한국인의 발상’을 비롯해 ‘나의 서울 백서’, ‘한국을 먹는다’,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 등 한국에 대해 책을 30권도 넘게 썼다. 그런데도 “죽을 때까지 한국관련 책을 두권 더 쓰고 싶다”고 말한다. 일본 언론 촤고의 지성인 그를 지난 20일 산케이신문이 있는 서울 정동 경향신문 13층 사무실에서 만나, 그토록 ‘한국을 못 떠나는 이유(한국의 미)’가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한국에는 언제 처음 왔고, 요즘 한국 생활은 어떤지.

▲“1978년 한국에 유학을 처음 왔어요. 그때부터 서울에 살았는데 대한민국이 많이 변했네요. 물론 좋게 변했죠. 그런데 너무 개발되고 모든게 편리해지면 아쉬운 점도 있어요. 좋은 인심이나 소박한 마음 등이 점점 사라지니까 말이죠. 아무튼 생활이 많이 편리해 졌고, 우리(일본인)도 생활하는데는 거의 지장이 없습니다.”

-처음 한국에 대한 인상과 지금의 한국은 어떻게 변했나.

▲“당시 일본에서는 한국 이미지가 사실 안 좋았어요. 어둡게 보는 시각이 많았죠. 다시 말해 발전 못하고 있다든지, 지저분하다, 또 북한이 있어 가기 무섭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실제 와보니 한국 사람들이 아주 밝고 활기차게 살고 있었어요. 그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죠. 그래서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면서 산 것이 벌써 30년이상 지났네요.

-휴일에는 주로 어떻게 지내는지.

▲“전에는 골프를 쳤는데 5∼6년전부터 안칩니다. 그 대신에 산에 가서 낚시를 해요. ‘계류(溪流)낚시’라 하는데 산 계곡 맑은 물에 사는 고기들과 노는 거죠. 물론, 잡아서 그냥 놔주고 그러죠. 낚시를 겸해서 하는 등산 비슷한 건데, 아주 몸에 좋아요. 그래서 거의 매 주말 산에 갑니다. 낚시란게 나이 들어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또 산도 좋아해서 설악산, 태백산, 오대산 등 전국의 산도 거의 다 가 봤어요.”

-한국의 산은 일본의 산들과 어떻게 다른가.

▲“일본산은 아무래도 화산도 많고 하니까 국토가 젊어서 무서울 정도로 험해요. 한반도는 역사가 깊어서 늙은 땅이죠. 그래서 자연이 아주 부드러우면서 위험하지도 않아 산에 가기가 편해요. 한마디로 ‘산이 부드럽고 온순하다’ 할까요, 나이든 사람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다는 느낌입니다.” �

-‘한국의 미’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전국 산을 포함해 여러 지방을 많이 다녀 보았어요. 그중 서울은 가장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도시에 산이 있고 강도 있고 이런 곳이 세계적으로 드물어요. 그래서 자연환경이 아주 아름다운 도시 서울 자체가 하나의 ‘미(美)’라 할 수 있죠.

특히 외국인들이 김포공항이나 인천국제공항에서 강변도로, 88올림픽대로를 따라 서울시내로 들어 오잖아요. 그때 바라 보이는 북한산이나 시내가 아주 좋아요. 한폭의 그림이죠.

그리고 ‘한국의 미’라면 역시 한복을 꼽겠어요. 요즘은 한복을 볼 기회가 많이 줄어 들었지만 옛날에는 추석, 설같은 명절때마다 길거리서 많이 볼 수 있었죠. 간혹 결혼식이나 잔치모임에 가면 나이드신 분들이 한복을 입고 계시는데, 점차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요.

한복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아름다운 옷인데 왜 무시할까. 일본 사람들은 요즘 전통 옷 기모노를 많이 입어요. 기모노의 붐이 될 정도로 말입니다. 특히 젊은 여자들이 많이 입죠. 그래서 한복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식도 하나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어요. 소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이 나온다는 것이 특징이죠. 빈틈없이 요리가 많이 나오는 걸 눈으로 볼때 아주 아름다워요. ‘이것이 한국음식’이란 느낌을 강하게 받죠. 하나씩 코스로 나오는 요리는 많지만 이런 건 세계적으로도 없어요. 일본도 ‘가이세키요리(會席料理)’이라해 조금씩 함께 나오는 것이 있지만 그렇게 잔뜩 호화스럽게 접시가 몇십개 나오진 않아요. 이것도 하나의 아름다움죠.”

-30년이상 살면서 맛 책까지 썼는데, 한국 음식에 말해 달라.

▲서울에서 현재 혼자 살고 있고 집에서 해먹는 것도 귀찮고 해서 99%가 외식입니다. 안 먹으면 죽어버리니까(웃음) 거의 매일 밖에 나가 한식을 먹죠. 한식은 기본적으로 일본과 같은 밥이나 된장국 등이 주니까 그렇게 어려움은 없고 입맛에도 잘 맞아요.

최근 ‘한식의 세계화’란 말을 많이 하죠. 어떻게 하면 세계화가 되느냐’하는 것인데, 요즘 한정식집에 가면 ‘퓨전화’라 해서 먼저 샐러드가 나와요. 재료도 전통적이 아닌 서양요리 비슷한 것들이 퓨전화 돼있는데, 저는 조금 불만입니다. 음식에 드레싱이나 마요네즈까지 쓰는 것도 한식의 세계화인지 의문이예요.

결국 ‘전통의 맛’이라 할까요. 그런 한국 고유 전통의 맛을 재인식해서 살려야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음식이란게 입으로만 먹는게 아닌 눈으로, 귀로도 먹는 종합적 문화죠. 그래서 요리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릇과 음식점 분위기, 방에 뭐가 걸려있는지 또 직원들의 매너, 이런게 다 음식의 맛을 냅니다.

식당에서도 서빙하는 사람의 매너와 전문성이 중요한데, 아르바이트생 같은 아마추어가 많은 거 같아요. 그러니 음식에 대해 별 지식이 없는 거죠. 음식은 좋은데 종업원이나 어떤 분위기 때문에 입맛이 떨어지면 안되잖아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교육을 시켜야겠다. 그게 아주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일본 관광객이나 지인들이 먹거리를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위해 정부 차원의 무슨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영부인도 명예회장을 맡고 배용준씨도 참여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첫 메뉴로 비빔밥을 정했다는데, 비빔밥이 과연 세계화의 1호로 적합할까하는 겁니다.

비벼서 먹는 것은 일본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서양 사람들께는 어떨까. 그래서 삼계탕이나 쌈을 추천하고 싶어요. 쌈은 야채로 밥이든, 고기든 싸서 먹잖아요. 이렇게 싸서 먹는게 한국음식의 특징이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거죠.

세계적 추세가 웰빙이고 하니 이런 쌈음식을 잘 개발하면 세계화되지 않겠나, 또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파전 같은 전종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는 다른 한국 사람만이 가진 매력과 강점은.

▲보통 한국사람들이 일본사람에 비해 불친절하다고 보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아주 친절하고 정이 많아요. 다만 그것이 어떤 시스템에서 메뉴얼화, 표준화가 안 돼있다는 거죠. 이런 좋은 성격이니 우리 외국인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반듯이 친절하게 대해준다는 거죠. 한국 사람들의 친절함을 유도하는 노하우를 전 알고 있어요(웃음). 서울 저팬클럽(서울 일본인회)의 고문도 맡고 있지만 늘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하죠.

서로가 마음을 여는데는 시간이 필요없고 한번 열면 쉽게 친해진다.
자기 마음을 솔직히 말하고 표현한다. 이런 점들이 한국 사람의 매력이고 일본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죠.” /dkson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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