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원교수의 뮤지컬,영화에 빠지다] 싱글즈,요즘 청춘들 이야기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0.22 16:24

수정 2009.10.22 16:24



시리즈 연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우리 작품을 선택했다. 영화와 무대의 만남이라는 유행은 우리나라 문화산업 안에서도 예외 없이 각광받고 있는 인기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선택한 첫 작품은 ‘싱글즈’.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예쁘고 연기 잘했던’ 여배우 장진영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던 탓이다.

장르를 넘나들며 우리나라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 콘텐츠가 처음 시작된 곳은 이웃나라 일본에서였다. TV드라마 작가인 가마타 도시오가 연속극용 대본으로 쓴 ‘29세의 크리스마스’가 시발점이었는데 후지TV에서 방영됐던 드라마가 대중적 호흥을 받자 1994년에는 독자적으로 두 권짜리 소설을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제목으로 쓰인 ‘29세의 크리스마스’란 서른을 목전에 둔 나이에 12월을 보내고 있는 노처녀 여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상징하는 데 소소한 사건 전개와 감수성 예민한 문체가 특히 20∼30대 여성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같은 제목의 번역본이 출판돼 독서광들 사이에서는 은근히 읽을 만한 책으로 손꼽히는 유명세를 누렸고 영화버전의 제작은 바로 이 소설의 가치를 찾아낸 권칠인 감독의 혜안으로 완성되었다.

콘텐츠로서 ‘싱글즈’의 매력은 물론 적나라한 노처녀의 사랑과 삶이라는 소재적 재미에서 출발한다.
내숭을 떨 것도 없고 알 것도 다 알 만한 나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주변과의 관계 때문에 아려하고 쉽게 상처받기도 한다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캐릭터 설정이 큰 매력으로 작용됐다. 사실 요즘 세계 문화산업에서는 이런 내용이 꽤나 각광을 받고 있다. 통통한 외모에 푼수 성향도 다분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영국 노처녀 이야기를 그린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그렇고, 뉴욕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 사는 미혼남녀 친구들의 이야기인 시트콤 ‘프렌즈’나 역시 뉴욕 노처녀들의 적나라한 삶과 사랑을 그린 연속극 ‘섹스 앤 더 시티’도 모두 따지고 보면 공통분모를 지닌 유사한 성격의 콘텐츠들이다. 몇 해 전 큰 인기를 누렸던 우리나라 공중파 TV의 인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역시 이 부류에 속한다. 뮤지컬에서도 이런 유행이 반영된 작품이 있었는데, 국내에서도 번안 무대가 꾸며졌던 앤드루 로이드 웨버 작곡의 1인 뮤지컬 ‘텔 미 온 어 선데이’가 그런 경우다. 지금은 뮤지컬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SES 출신의 바다(최성희)가 주인공으로 나와 천연덕스레 노처녀 사랑 타령을 펼쳐 박수를 받았다.

왜 느닷없이 노처녀의 사랑이야기에 요즘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일까. 표면적으로는 여성들의 평균 결혼연령이 과거에 비해 많이 늦어진 탓도 있다. 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현대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큰 몫을 차지한다. 결혼 적령기라는 인위적인 굴레에 쫓겨 대강 조건 맞춰 서둘러 결혼을 하기보다 자신만의 사랑, 그 진정성을 찾고 싶어 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인식이 이러한 콘텐츠들의 대중적 인기를 불러온 셈이다.

국내에서 ‘싱글즈’가 스크린용 영화로 첫선을 보였던 것은 지난 2003년이다. 영화는 요즘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오는 그 흔한 특수효과 하나 없이 제작됐지만, 결혼 적령기를 살짝 놓친 두 쌍의 청춘남녀가 용감할 정도로 정직한 내면의 이야기를 펼쳐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주인공인 나난 역으로 등장했던 장진영은 이 영화로 그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영화 속에서 보여준 털털한 이미지의 연기는 그를 그저 곱상한 얼굴에 도시적인 외모를 지닌 CF 모델 출신 연기자로만 기억하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싱글즈’가 무대용 뮤지컬로 다시 만들어진 것은 영화가 제작된 지 4년 만인 2007년이다. 대학로의 중소형 무대인 동숭아트센터에서 처음 막을 올렸는데 그해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작곡상과 무대의상상, 남자신인상 등 3개 부문을, 이듬해 더 뮤지컬 어워드에서는 최우수작품상과 극본작가상을 수상하는 좋은 성과를 기록했다. 좋은 무비컬이 늘 그러하듯 뮤지컬 ‘싱글즈’의 흥행은 잘 알려진 스토리를 단순히 무대에서 극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공연만이 지닐 수 있는 매력을 덧붙여 환생시킨 노력에서 비롯됐다. 영화가 나난을 중심으로 진행됐던데 비해 뮤지컬에서는 그의 친구인 동미와 정준의 이야기 비중을 더 늘린다든지 쉬지 않고 이어지는 대사를 활용해 감각적인 느낌을 만들어내는 등 뮤지컬만의 재미를 찾아내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했다.

2009년 새롭게 제작된 ‘싱글즈’ 역시 무대의 실험성을 잘 살려내 관객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소극장 버전이라 외형은 과거에 비해 작아졌지만, 그래서 더 아기자기한 극적 재미가 더해져 이야기의 밀도는 훨씬 촘촘해졌다. 스토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무비컬이 지녀야 할 미덕이라면, ‘싱글즈’는 꽤나 성공적인 변신으로 인정할 만하다. 내년에도 우리 무대에 등장하는 무비컬의 흥행몰이는 계속될 전망이다. 당장 ‘은행나무 침대’와 ‘번지 점프를 하다’의 물밑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며 연초에 인기를 누렸던 ‘미녀는 괴로워’의 앙코르 무대도 오를 것이라는 소식이다.
드라마 ‘선덕여왕’도 내년 1월이면 뮤지컬로 선보일 예정이다. 기왕이면 한류를 잇는 완성도 있고 재미도 놓치지 않는 무비컬의 탄생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치밀하게 계획하고 노력하면 정말 가능할 것 같아 즐거운 요즘이다.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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