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남자 프로골퍼 중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없다고들 한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서 아시아인으로서는 전인미답인 통산 7승을 거두고 있는 ‘한국산 탱크’ 최경주(39·나이키골프)와 올 PGA선수권대회서 동양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한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이라는 ‘원투 펀치’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반론이 당연히 따를 것이다. 그들이 스타 플레이어임에는 표면적으론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우리가 과연 그 둘을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인정하고 있는 가에는 의문이 든다.
우선 그들의 모자에 선명이 새겨진 로고를 보자. 그들을 후원하는 것은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국내 대기업이 아닌 이른바 다국적 골프 브랜드들이다. 그들이 골프백과 골프화에 태극기를 수놓은 채 전 세계 투어를 전전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마디로 국가대표급 기업이 국가대표 골프 선수를 홀대하는 양상인 것이다. 올해로 나이키와 계약이 만료되는 최경주는 현 스폰서와의 계약 이전에 국내 중소 의류업체인 ㈜슈페리어로부터 다년간 후원을 받았고 양용은은 한동안 무적 신세를 면치 못하다 어렵게 계약을 체결했던 메인 스폰서 게이지 디자인이 경영난에 휩싸이면서 한때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렇듯 일부를 제외한 국내 대기업들이 골프 선수 후원에 인색한 데에는 2000년 P선수의 S사와의 결별과 무관하지 않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5년간 S사의 후원을 받았던 P선수는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이전의 배에 해당하는 연봉을 요구함으로써 양자는 끝내 결별 수순을 밟게 됐다. 결국 그 과정은 선수 스폰서십 시장에 영향을 미쳐 프로골퍼 후원에 관심을 가졌던 많은 대기업들로 하여금 발을 빼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꼴이 됐다.
이런 점에서 일본 골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한 이시카와 료(17)의 경우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15세 나이인 2007년 아마추어 신분으로 일본골프투어(JGTO) 먼싱웨어 KSB컵에서 우승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이시카와 료는 그 이듬해에 프로 전향을 선언해 1승을 거둔 뒤 올해는 메이저대회인 일본오픈을 포함해 5승을 거둬 현재 상금랭킹 2위에 랭크돼 있다.
이시카와 료는 일본 기업들의 전폭적 후원을 받고 있다. 그래서 다국적 기업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도무지 없다. 그의 모자와 티셔츠, 골프백에는 파나소닉, 도요타자동차, 전일본항공(ANA), 요넥스 등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 기업들의 로고가 빡빡이 부착되어 있다. 움직이는 일본 기업 광고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의 빼어난 외모를 더욱 빛나게 하는 다이내믹한 경기 스타일과 스폰서에 대한 철저한 배려, 그리고 어린 나이답지 않은 인터뷰 기술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마디로 뿌린 대로 거둬 들이고 있는 셈이다.
프로 선수가 고액 연봉을 받으려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 상황과 동떨어진 무리한 요구는 우리의 정서상 기업들로 하여금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데 굳이 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오히려 선수 후원에 난색을 표하게 한다. 지난 9월에 열렸던 코오롱하나은행 한국오픈에 출전했던 이시카와 료가 스폰서인 코오롱 그룹의 이동찬 명예회장으로부터 엘로드 골프웨어를 선물 받고서 “옷이 매우 마음에 든다”면서 “돌아갈 때 몇 벌 더 사가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 굴지의 기업들이 그를 후원하기 위해 혈안인 이유를 알게 하는 단면으로서 우리 선수들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golf@fnnews.com 정대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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