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의 10대 청소년들은 링 위에서 정복수와 강세철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궁금해 했다. 당시 정복수는 한국 복싱 중량급의 부동의 왕자, 강세철은 떠오르는 별이었다. 과연 둘이 대결해 누가 이겼는지 실제로 그런 대전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삼삼해 모르겠다.
21세기를 사는 점잖은 어른신들도 가끔 지구상의 최강자가 누구일까 궁금해 한다. 물론 이 때의 최강자는 헤비급 복서도 아니고 K1 격투기 챔프는 더구나 아니다.
어르신들이 궁금해 하는 세계 최강자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세계 정치 경제 정세를 쥐락펴락하는 거물을 뜻한다.올해도 어김없이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 67인의 명단과 순위를 발표했다. 이달 초에 발표된 이 명단 1위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올라 있다. 지구촌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절로 접어든 지 이미 오래고 80년대 말 냉전 종식으로 유일 지존이 된 미국의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센 사람 1위에 꼽힌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2위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 3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이자 실권자가 꼽힌 것도 두말할 나위 없다.
문제는 24위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꼽힌 점이다. 아무리 그가 핵무기를 제조했고 미사일을 발사했어도 북한은 세계 최빈국의 하나다. 김정일 자신은 세계 최악의 독재자 축에 든다. 이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내년에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의장 역할을 할 이 대통령의 이름이 없다니 경악한 한국인들은 차라리 이 잡지의 진지성을 의심하고 싶어진다. 이번에 100명이 아닌 67명을 선정한 것도 세계 인구 67억명을 기준으로 1억명당 1명을 뽑았기 때문이란다.
이 명단 6위에 멕시코 거부 카를로스 슬림을 선정한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슬림은 레바논 출신 멕시코인으로 통신재벌이며 경제 대통령이다. 그의 재산 규모는 350억달러로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1위가 됐다. 그러나 아무리 재산이 많다해도 중남미를 벗어나면 그의 이름은 희미해진다. 그러니 명단 순위의 작성 배경과 기준이 ‘정복수가 세냐 강세철이 세냐’보다 더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나.
이렇게 말하면 김정일로서는 자신이 24위에 뽑힌 게 “그렇게 아니꼽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2008년의 뉴스위크지를 쳐들어 보일 수도 있다. 그 잡지 송년호는 2008년 세계 파워 엘리트 50인을 선정하면서 김정일을 12위에 올렸다. 1위는 역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였다. 김정일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 동안 한국인들은 웃어야 좋을지 울어야 좋을지 난감한 표정을 지을지 모른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북핵 6자회담에서 북한이 나머지 5개국을 ‘요리’하는 솜씨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김정일이 영향력 있는 인물에 뽑힐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감정에 치우친 처사가 아닐까. 핵 폐기 게임에서 끝까지 버티는 그의 벼랑끝 전술, 협상 고비마다 시간을 버는 암초를 설치하는 재주는 그가 충분히 세계 정세에 영향을 주고도 남을 만한 인물임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 포브스나 뉴스위크에 대해 유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김정일은 당연히 받을 대접을 받았고 그런 대접을 ‘헌상’한 것은 한국 미국 일본 세 나라다. 이들 세 나라의 목표는 북한의 ‘핵 포기’, 이에 맞서는 북한의 목표는 ‘핵 보유’, 지금 어느 쪽이 성공하고 있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2009년 11월 18일 세계 최강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다. 그의 철학은 ‘핵 무기 없는 세상’, 이명박 대통령의 신념은 ‘북핵 절대 불용’이다. 바로 이 날이 두 대통령의 철학과 신념이 ‘드림 컴 트루’가 되는 역사적인 날이 되기를 기원한다./ksh910@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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