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특별기고]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 신중해야/정해근 대우증권 전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2.02 17:47

수정 2009.12.02 17:47

최근 경기부양 등 감세정책으로 인한 세수 부족을 메울 방편으로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장내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와 관련해 시장 참가자들이 몹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현물시장과의 과세 형평성, 조세원칙 등 과세 이유에 비해 금융시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급 효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시장의 설득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파생상품 거래세가 부과된다면 내외국인 투자자들은 거래세 없고 유동성 풍부한 홍콩, 싱가포르 등 해외로 발을 돌릴 것이며 우리 금융시장은 동북아 금융허브로의 도약은커녕 오히려 삼류시장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정확한 세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선물은 약정금액의 0.03%, 옵션의 경우 거래대금의 0.1%를 부과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거래세는 현·선물간 가격 괴리를 이용한 무위험 차익거래의 여지를 없애고 상대적으로 가격에 매우 민감한 투자자인 스캘퍼(Scalper·미미한 가격 변동을 이용, 이익을 실현하려는 투자자)도 설자리를 잃게 돼 시장 유동성이 사라지면서 시장의 공동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에 관한 해외 사례를 살펴보아도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만만이 유지하고 있으나 그 세율이 미미해 세수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그나마 국내 투자자조차 해외로 이탈시키는 역효과만 초래했다.

일본도 1987년 도입했으나 세수 확보보다는 시장유동성 저하 등 그 폐해가 지나쳐 1999년 거래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 체제로 통합했다. 미국도 과거 20년 이상 파생상품에 관한 거래세 도입 방안을 검토했으나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시장의 주장이 받아들어져 마찬가지로 현·선물 시장 전체에 대한 자본이득 세제로 궤도를 수정했다.

장내 파생상품 거래세로 인한 시장 유동성 저하에 따라 파생상품시장이 충격 완화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장내 파생상품과 유기적으로 밀접히 연계된 주가연계증권(ELS), 주식워런트증권(ELW), 상장지수펀드(ETF) 등 현물시장의 효율적 위험관리도 곤란해지며 도미노처럼 연관 금융시장의 심각한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 시스템 전체의 비효율성이 빚어져 외자유출 등 국가경쟁력 약화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1996년부터 도입된 코스피200선물과 옵션은 길지 않은 역사이지만 국내외 투자자, 업계, 학계, 감독기관 등 모든 시장참가자들의 피땀어린 노력에 힘입어 우리나라 전체 금융·자본시장 중 유일하게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금융상품이다. 이러한 상품을 국회가 앞장서서 명품화를 가로막고 투자자의 해외 이탈을 조장하며 국부 해외유출을 방조하는 듯한 법안을 구상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국회의 이번 개정안 발의가 당면한 세수 확보 및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는 일부 공감되는 측면도 있으나 장내 파생상품 거래세는 파생상품시장뿐만 아니라 현물시장의 위축을 가져와 금융시장의 고사로 전체 금융시장으로부터의 조세 수입 자체가 오히려 급감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많은 전문가가 우려하고 있다.

만약 세수 증대가 필요하다면 시장의 거래량과 유동성에 직접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은 시장 친화적 대안을 검토해야지 시장에서 투자자 이탈이 뻔한 설익은 정책은 자칫 ‘글로벌 1등‘ 상품마저 시장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황금알을 낳고 있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입법 논의 과정에서 당장의 세수 확보와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을 통한 금융 선진국 도약 두 가지 중 진정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건전 재정을 위한 세수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해도 중장기적으로 시장을 살려가며 세수를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비록 느리더라도 정도를 걷는 것이며 부디 앞으로의 논의 과정에서 모두가 윈윈할 현명한 대안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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