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 한국인의 ‘3세계 외국인 차별’/김동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2.30 16:48

수정 2009.12.30 16:48

나라 밖에 오래 살던 사람들이 귀국해 가장 놀라는 것은 서울에 외국인이 무척 많다는 사실이다. 그제 만난 한 지인은 안산행 지하철이 뉴욕의 6번 지하철 같다고 말했다. 지하철 6번은 한인과 중국인, 베트남인 밀집지역인 플러싱을 관통하고 있어 미국에서 백인 보기가 힘들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는 뉴욕의 지하철이다.

지난 여름 서울에서 버스에 탄 29세의 인도 남성 보노짓 후세인과 동행했던 한국인 여성은 옆자리 남성으로부터 인종 차별이 담긴 욕설을 들었다. 당시 사건은 검찰이 가해자 박씨(31세)를 모욕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관심이 집중됐다.

법원에 계류중인 이 사건에 자극을 받은 정치권은 인종 차별에 대해 법적 처벌을 부과하는 법안 마련에 착수했다. 어떤 아시아인은 버스에서 잠이 들었는데 종점에 이르자 버스 기사가 발로 차면서 깨운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파키스탄 남성과 결혼한 한 한국여성의 경우 마치 이상한 짓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봐 남편과 다닐 때는 버스와 지하철을 아예 타지 않는다고 말했다.

몇 해 전 우리 집에 마이클이라는 미국인 변호사가 1년간 머물렀다. 유학기간 중 친구처럼 지냈던 잘 생긴 미국인이다. 여행이 좋다며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뜬금없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그가 우리 집에 살던 동안 나는 많은 재미 있는 일들을 경험했다.

무엇보다도 미남 백인에게 한국인이 얼마나 호의적인가를 아는데 필요한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끔 영어 강사로 일했던 마이클은 저녁마다 수강생, 주로 젊고 예쁜 아줌마들에게 받은 선물을 한아름씩 들고 왔다. 선물은 참으로 다양했다. 넥타이, 지갑, 나중에는 속옷에 심지어는 토종꿀에 잰 영지버섯이나 인삼 등도 곧잘 들고 왔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스스로 부끄러워 했다.

그러나 백인에 대한 지나친 호의와는 달리 이땅에 사는 많은 제3 세계 사람들에 대한 한국인의 차별대우는 상상을 초월한다. 백인들을 보면 ‘커피 한잔 하겠습니까’라며 호의적인데 반해 유색인종들에게는 대뜸 ‘얼마나 버느냐’고 물으며 얕잡아 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우리는 최근까지도 ‘단일민족’임에 자부심을 갖도록 교육받았고 살색과 살구색이 같은 색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 달라진 세상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구는 저출산으로 급감하고 있지만 외국인은 120만명으로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국제연합(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에서 순수혈통, 혼혈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개탄하며 인종차별금지법 도입을 권고해 왔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이 법이 제정되면 이주 근로자가 더 많이 유입돼 한국인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며 우범지대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단일민족은 축복이며 이주 근로자가 계속 유입되면 다른 나라처럼 앞으로 인종전쟁으로 나라가 분열될 위험이 크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한국인의 인종에 대한 인식에는 서구인에 대한 부러움과 혐오감이 혼재돼 있다는 것이다. 언뜻 백인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미국인을 가리킬 때는 과거 한국을 지배했던 일본인과 중국인을 가리킬 때 쓰는 ‘놈’을 붙이는 경우가 많은 것이 그 예다.

눈을 돌려 보자. 100만명이 훌쩍 넘는 한인들이 미국에 산다. 뿌리내린 지도 1세기가 지났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한인들은 싫어한다. 마치 우리가 이땅에서 제3세계 사람들을 깔보고 혐오하는 것과 똑 같은 이치다.

‘제노포비아(Xenophobia)’란 말이 있다.

우리말로 외국인 공포증, 외국인 기피증으로 해석되는 이말은 단일 민족인 한국인에게 잘 먹혀 드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외국인에 대한 기피증이나 멸시가 유독 가난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몰려 있다는 점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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