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브로드웨이통신] 손드하임에게 직접 듣는 손드하임 이야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1.11 11:36

수정 2010.01.11 11:22

▲ '손드하임 온 손드하임'
내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2년 전 그의 대표작인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의 뉴욕 리바이벌 공연에서였다. 그 당시 나는 제작자나 작곡가에 대한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재즈와 뮤지컬의 전문가였던 지인의 강력한 추천으로 극장을 찾았다. 그런데 예상을 깨뜨리는 변화무쌍한 선율과 상상보다 더 앞서가는 무대 효과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무엇보다 탄탄한 줄거리로 점묘법 화가 조르주 쇠라의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사랑을 그린 드라마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아버렸다. 그 후로도 몇 달 되지 않았던 상연기간 동안 무려 4번이나 극장을 찾으며 열성적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공연 홍보를 하곤 했으니 나름 ‘공연 하나 보고’ 스티븐 손드하임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렸다 할 수 있겠다.

그러기에 당시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공연을 성황리에 이끌었던 라운드 어바웃 씨어터에서 ‘손드하임 온 손드하임(Sondheim on Sondheim)’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이메일 뉴스레터를 받았을 때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클릭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올 봄 시즌을 맞아 라운드 어바웃 씨어터가 주관하고 스티븐 손드하임과 그의 오랜 협력자 제임스 라파인이 기획한 이 ‘손드하임 온 손드하임’ 프로젝트에는 바바라 쿡, 바네사 윌리엄스, 그리고 톰 워팻 등이 무대에 올라 20여개가 넘는 손드하임의 명곡들을 새로운 버전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스티븐 손드하임의 몇 년 동안에 걸친 인터뷰와 영상 기록물들이 무대에 설치될 수많은 모니터들을 장식하며 시각적으로도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 효과와 재미 뿐만 아니라 스티븐 손드하임이 직접 이야기하게 될 그의 음악과 철학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종종 스티븐 손드하임은 그 유명한 런던 출신의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비교되곤 한다.
각각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를 대표하는 뮤지컬 작곡가로서 누가 더 대중적인가, 누가 더 문학적인가, 누가 더 혁신적인가, 누가 더 성공적인가를 놓고 갑론을박 말도 많다. 올리비에상 최다 수상 기록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보유하고 있고 토니상 최다 수상 기록은 스티븐 손드하임이 가지고 있다. 감각적인 선율과 화려한 스타일로 대중성과 흥행성을 굳건하게 확보하고 있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 철저한 짜임새의 모더니즘 음악과 날카로운 언어의 유희로 늘 새롭고 지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스티븐 손드하임. 생일마저도 3월 22일로 같은 그들은 20년의 세월을 넘어서는 뮤지컬계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국내에서도 ‘어쌔신’, ‘스위니 토드’, ‘컴퍼니’ 등 손드하임의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기는 했으나 상대적으로 그의 이름은 국내에서는 덜 알려져 있는 상태이다. ‘관객 친화적’이지 않은 그의 음악과 영어의 묘미를 최대한도로 살린 그의 가사 때문에 국내에서는 공연이 올려질 때마다 난해하고 일반인이 다가가기 어렵다는 비평과 함께 그의 천재성과 예술적 독특함을 찬양하는 리뷰만 줄을 잇곤 했었다.

손드하임의 음악적 성장기를 살펴보면 그의 그러한 성향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부모의 이혼 후 고통스런 사춘기를 지나기 전 초창기 브로드웨이의 명콤비 중 한 명인 오스카 해머스타인과 만나게 된 그는 자연스럽게 뮤지컬에 빠져들게 된다. 수학적인 머리도 비상했던 손드하임은 대학에서 배로우 교수를 사사하며 작곡의 ‘수학적인’ 매력을 맛보게 되고, 해머스타인-로저스 콤비에게서 브로드웨이의 전통과 뮤지컬 창작의 틀을 익혔다. 졸업 후 현대 작곡가 밀튼 배빗의 문하를 거치면서 손드하임은 진정한 혁신가로서의 준비를 마친다.

참고로 브로드웨이 대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미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지휘자이자 작곡가 레오나드 번스타인의 곡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작사가 이름에 스티븐 손드하임이라 적혀있는 것을 눈여겨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최소한 내게는 무척 새로운 사실이었다. 대부분 홍보의 초점과 대중의 이목은 번스타인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그렇게 20대에 이미 작사가로 데뷔한 손드하임은 마흔 살이 되던 해 뮤지컬 ‘컴퍼니’를 무대에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뮤지컬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70년대에는 해롤드 프린스와, 80년대에는 제임스 라파인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온 그의 뮤지컬에는 그만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거의 모조리’ 깨뜨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가 달콤하고 부드러운 선율 혹은 전반부가 끝나기도 전에 귀에 익어버리는 반복적인 테마를 사용하기 보다는 대책 없이 튀어나오는 소리와 실제 사람의 대화 억양과 흡사한 음률에 가깝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고통스런 음계가 해결되는 화성에 도달할 때의 그 짜릿함과 중독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가져다 준다는 것. 등장인물들의 삶은 뻔한 권선징악이나 흑백논리의 기승전결을 이루지 않고 우리네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고단한 인생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으며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정답 없는 문제에 고민하고 갈등하며 드라마를 만들어간다는 것. 그의 뮤지컬에는 단순한 반복이 없다고 한다. 모든 선율 하나하나와 대사의 작은 배치 하나까지도 치밀하게 짜여지고 철저하게 변화를 주며 끊임없이 신선한 소리와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라운드 어바웃 씨어터의 예술감독인 토드 헤임즈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뮤지컬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발자취를 돌아본다는 것 이상의 특별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관객들은 이번 공연을 통해서 뮤지컬계의 역사적 작곡가이자 위대한 예술가와 직접 소통하며 그를 이해하는 기회를 가지게 될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을 바로 눈 앞에서 그의 친근한 해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번 ‘손드하임 온 손드하임’ 공연은 그의 80세 생일 직전인 2010년 3월 19일부터 프리뷰를 시작으로 6월 13일까지 브로드웨이 54번가에 있는 라운드 어바웃 씨어터의 스튜디오54 극장에서 상연된다.
브로드웨이 빌딩벽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현란한 색상의 뮤지컬 간판들과 식상한 극 전개, 요란한 조명과 수선스러운 군무에 질린 당신이라면 이번 기회에 한번 새로운 경험을 찾아가보는 것이 어떨런지.

/뉴욕=JESH.Project@gmail.com

■JESH Project는 재이, 은수, 성원, 효 등 4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공연예술기획 프로젝트 팀으로 현재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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