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대학병원 CEO에게 듣는다] (10) 을지병원 홍성희 원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3.08 16:19

수정 2010.03.08 16:19

을지병원은 54년 전 서울 을지로에서 산부인과로 출발했다.

이후 15년 전 서울 노원구로 자리를 옮기면서 지역병원으로 성장했다.

태생적인 장점을 살려 산부인과 분야에서 특화돼 있으며 이후 특화 분야를 족부, 당뇨병, 뇌신경 등으로 확대했다. 지난해에 설립한 강남을지병원은 소아청소년과를 내세워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을지병원은 조만간 마곡지역이나 수원 영통지구에 새 병원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을지병원 홍성희 원장은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을지병원의 특징은 빨리 성장하기보다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원장에게 특화 분야 확대와 차별화된 의료장비, 서비스로 기반을 다지는 을지병원의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을지병원 만의 특화된 의료 분야가 있다면.

▲을지병원은 산부인과로 출발해 올해 설립 54주년이 됐다. 때문에 산부인과가 가장 특화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모자보건센터를 별관에 따로 갖추고 있다. 또 1998년부터 불임센터와 생명과학연구소에서 다양한 연구를 해 왔다. 인공자궁내막의 수립, 냉동보존의 손상기전, 난소반응이 나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미세용량 GnRH 배란유도법 등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족부센터는 족부를 처음으로 진료한 이경태 교수에게 환자가 많이 몰려 강남을지병원에까지 자리를 마련해 적체 해소에 나섰다. 산부인과 만큼이나 역사가 깊은 당뇨병센터는 매년 8만여명의 외래환자들이 찾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김응진 교수는 90세가 넘을 때까지 당뇨병 분야에서 진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뇌신경센터는 신경외과, 신경과에 최고의 의료진을 구성하고 응급실 도착 이후 진단, 검사까지 20분 이내, 최종 진단 후 혈전용해제 투여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인프라를 완비하고 있다. 얼마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급성 뇌졸중 환자의 초기진단과 치료, 사후 관리 등 평가결과에서는 1등급에 선정됐다. 그 밖에도 지역에서는 드물게 심폐기 없이 심장수술이 가능한 실력 있는 교수를 스카우트하고 전문간호사까지 배정해 심장수술을 활성화하고 있다.

―지역병원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역사와 전통이 있는 만큼 대부분의 진료 분야가 특화돼 있으며 병원 방문횟수를 줄이기 위한 원스톱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서울 동북부와 경기지역 일부에서는 종합병원으로서 탄탄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서울 노원지역에는 백병원, 원자력병원밖에 없어 의료 분야가 취약한 상황이었다. 이를 을지병원이 함께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족부나 당뇨 이외에 어깨나 무릎관절 등 꾸준히 인정받는 진료를 중심으로 특화 분야를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지방병원의 경우 진료를 받으면 치료를 위해 서울로 오는 경우가 많다. 거기 있는 의료진이 진료를 못해서가 아니라 서울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환자들의 생각 때문이다. 지역병원도 마찬가지의 편견이 있는 환자들이 있다. 우리 병원에 우수한 의료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가진 환자들이 있어 아쉽다.

―최근 다빈치 수술로봇 도입, 별관 개관 등 의료장비, 시설확충이 눈에 띈다.

▲서울 하계동에 문을 연 지 벌써 15년이 됐다. 그동안 내원객들의 요구 수준에 맞춰 휴식공간을 확보하고 입원환자들의 편의를 도모해왔다. 그러다보니 외래 공간이 넉넉지 못해 지난해 6월 제1별관을 준공하고 족부센터와 종합건강증진센터 등을 확장 이전했다.

수술로봇은 다른 대학병원들보다 도입이 다소 늦은 게 사실이다. 고비용이 부담스럽고 아직까지는 로봇에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것을 낯설어 할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수술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아 아시아에 있는 다빈치의 절반 가까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 이렇다 보니 병원의 경쟁력과 시대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를 도와 비뇨기과(전립선암, 방광암, 신장암, 부신종양), 외과(위암, 직장암, 대장암, 갑상선암), 산부인과(자궁경부암, 자궁근종) 영역 등의 수술에서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각 분야 교수 6명이 미국 연수를 마친 상태다.

―최근 방사선 종양학과를 신설했다.

▲우리나라 국민이 평균수명까지 살 경우 남자 3명 중 1명, 여자는 4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 을지병원이 도입한 최첨단 방사선 치료기 VMAT는 3차원 입체영상과 고에너지의 방사선을 이용해 체내 암세포를 추적·제거하는 장비다. 방사선 종양학과는 모든 암환자들의 치료를 목적으로 설립했다.

―을지병원이 마곡지역이나 수원 영통지구에 새 병원을 설립한다는 얘기가 있다.

▲수원에는 이미 3만1735.5㎡(9600평)의 부지를 확보한 상황이다. 하지만 많은 병원이 영통지역 내 병원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의료공급 과잉 문제 때문에 보류 중이다. 마곡 지역은 올해 말부터 부지를 분양한다. 현재 여러 병원들이 이 지역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 중인데 을지병원도 그 중 하나다. 새 병원이 들어서면 클리닉 중심의 병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을지병원은 성장 가능성이 큰 병원이므로 앞으로 새 의료시장 개척에 적극 나설 것이다.

―지난해 오픈한 강남을지병원의 경영상황은 어떤가.

▲강남을지병원은 점점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 이 병원은 성장학습발달센터다. 소아청소년과 중에서도 소아정신과, 소아신경과, 성장을 담당하는 내분비 교수들이 있다. 을지병원이 산부인과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소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강남 로컬병원 중 소아정신과가 있는 병원은 많지만 신경, 성장을 같이 보는 병원이 없어 이 부분을 보강한 것이다. 또 을지병원의 특화 진료인 족부와 건진센터도 들어가 있다. 을지병원의 특징은 빨리 성장하기보다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의사들의 임상진료도 중요하지만 의학연구도 중요하다.

▲병원에서는 의학연구를 위한 해외연수를 활성화하고 있다. 3∼5명이 1년씩 연수를 다녀오고 있다. 그러나 진료하려는 의사는 많아도 의학을 연구하고 실험하려는 의사가 별로 없는 것이 안타깝다. 의사들이 연구에 필요하다면 시설과 연수 등 어떤 요구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을지가족인 범석학술장학재단에서도 논문상 선정, 연구비 지원사업을 통해 1년에 2억원을 장학금, 연구지원비, 논문상으로 투자하고 있다.

■홍성희 원장은

을지병원 첫 여성원장이자 4명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한 홍성희 원장. 그가 병원 경영에 내세운 것은 가족 관계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화합'이다.

그는 "아이가 4명이기 때문에 가정에서부터 작은 사회가 형성된다"며 "룰이 정해지고 양보하는 가족 간의 화합을 병원 경영에 접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을지병원 규모가 680병상인데 직원 1300명에 의사는 200명이 조금 넘는다"며 "이 많은 사람을 화합해 병원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게 경영의 첫 걸음"이라고 설명했다.

화합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추진력이다.

홍 원장은 그동안 연구동과 제1별관 준공, 강남을지병원 개원 등 많은 일을 무리없이 해냈다.

최근에는 서울시 노원구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 공동의장을 맡았다.
홍 원장은 "을지병원이 산부인과로 시작했고 여성병원장이다 보니 협조해서 일을 같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며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어 30∼40년 후면 노인만 있는 세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평소에 하던 중 구에서 제의를 받아 흔쾌히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운동본부 활동에도 4명의 아이를 키운 노하우를 점목할 계획이다.


홍 원장은 "맞벌이 부부로서 육아의 책임을 감당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았다"며 "맞벌이 부부들이 부담없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보육시설 등이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45세 △제주도 △연세대의대 졸업 △한양대의대 의학박사 △을지병원 성형외과 과장 △을지의료원 재무이사 △을지병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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