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전 '만화방창' 전시 후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바라봤던 삶의 치열한 현장을 화려한 원색으로 경쾌하게 풀어낸 화가 사석원이 자신의 그림 앞에서 "하쿠나마타타, 다 잘될 것"이라며 해맑게 웃고 있다. |
미술시장의 블루칩 작가 사석원(50)도 역발상으로 성공했다. 지금은 현란한 색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서양화가 같지만 그에게 장르 구분은 무의미하다.
이미 20여년 전 '한국화는 다 그래'를 뒤집었다. 색에 대한 독한 갈증이 있었다. 1989년 서울 관훈동 송원화랑(현 노화랑)에서 첫 개인전 때 한지에 과슈·유화·아크릴을 사용한 그림을 내놓았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화가로 데뷔무대였던 이 전시는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수묵화와 달리 톡톡 튀는 색감이 화려한 그림은 의외로 반응이 대단했다. 작품은 첫날 다 팔렸다. 그의 인생에 찬란한 빛이 함께하는 순간이었다.사석원은 1984년 포장마차 풍경을 담은 수묵담채화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스타 작가' 원조다. 당시 전두환 정권 인재관리정책 수혜로 대상 수상과 함께 군면제 '1호'이자 마지막 행운아다. 상금 500만원, 5년간 직업을 바꾸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당시 500만원은 대형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국비장학생으로 프랑스 파리에 유학을 갔다. 파리8대학에서 원시미술을 전공했다.
그가 최근 '하쿠나마타타'(스와힐리어로 '걱정마세요. 다 잘될 겁니다'란는 뜻) 하며 나타났다. 세상 끝을 경험해 본 사람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닮는 것일까. '만화방창' 금강산 그림으로 돌풍을 일으킨 후 3년 만에 다시 동물 그림으로 전시장에 돌아온 그는 지천명의 나이답지 않게 해맑았다. 두려움은 의심에서 오는 것. 1년의 반을 여행 다니며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삶에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
닭, 호랑이, 당나귀, 올빼미. 따뜻하고 해학적이면서 세련된 원시성을 지닌 동물 그림으로 유명한 그는 이제 이름 석자만으로 미술시장 바코드가 됐다. 수더분하고 소탈해 보이는 그는 '다 그래'를 뒤집은 것처럼 '거꾸로 디자인된' 안경을 쓰고 있다. 평범하지 않다는 증표 같았다.
―그림엔 아프리카에 다녀온 흔적이 역력하다.
▲3년 전 '만화방창' 전시가 끝난 후 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로 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질긴 생명력의 근원을 느꼈다. 아프리카에선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버팔로를 물어뜯는 사자, 누 떼가 바다를 건너는 순간 악어가 나타나 잡아먹는 광경 등 곤두선 삶의 비늘들을 숨막힌 채 바라봤다. 힘센 자에게 희생당하지 않으려고 단 1초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산다는 것의 강한 고뇌를 느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삶은 지금도, 이 순간에도 지워지고 있다.
▲ ▲ 하쿠나 마타타/왕의귀환/195x120cm/2009 |
―캔버스가 아니라 칠판에 그린 그림, 이유는 무엇인가.
▲칠판 그림은 2010년 한정판이다. 더 이상 이 작업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고통과 환희를 함께 표현하고 싶어 선택한 재료다. 아프리카서 느낀 생존 문제를 고민하다 타국에 와서 고생하는 외국인노동자를 생각했다. 가난한 외국인노동자들의 처절한 존재감과 아프리카 초원에서 생존투쟁을 벌이는 야생동물의 존재감이 중첩됐다. 2007년 말부터 인천 남동공단 등지를 찾아다니면서 칠판에다 모국어로 짧은 글을 써 달라고 했다. 고통이나 원망보다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모국에 대한 자부심,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희망이 주를 이뤘다. 그래서 삶은 살 만한 것이다. 글을 받은 40∼150호짜리 칠판을 코팅한 후 동물과 인물이 어우러진 원색의 화려한 그림을 그렸다.
―현란한 원색, 아낌없이 바른 물감, 재료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물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긴 한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에서 수입해서 쓴다. 물감은 유독 어느 한 색이 먼저 없어질 때가 많은데 그 한 색을 위해 물감을 주문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물론 국내 물감도 써 봤지만 느낌과 질이 다르다. 색을 섞지 않는 것도 원시성 그대로, 생생한 생명력을 그대로 전달하는 의미다. 팔레트를 쓰지 않는다. 튜브를 화면에 팍팍 튀겨 저절로 그려지는 순수함이 좋다. 두툼한 물감이 마르려면 한 50년은 걸릴 것이다. 아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마르지 않을 것 같다.
―가나아트센터의 오랜 전속 작가다.
▲1988년에 가나화랑 전속 작가가 됐다. 그땐 '구름 위를 걷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를 느낄 정도였다. 파리 유학 당시 가나화랑을 처음 알았다. 당시 피악(FIAC·세계 3대 아트페어)에 한국 화랑으로는 유일하게 가나가 최종태 작품으로 참가했다. 그때 프랑스에는 그랑팔레에서 박생광 화백 회고전이 열려 파리 시내에 포스터가 가득했었다. 이 두 가지 일은 내게 사건 같은 충격이었다. 가나화랑은 대단한 이미지로 내게 새겨졌다. 1988년 귀국 후 입시학원 강사를 하다가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포토폴리오를 만들어 무작정 가나화랑을 찾아갔다. 이호재 사장은 앨범을 보더니 실물을 봐야 알 것 같다며 연락하겠다고 했지만 보름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바닥난 용기를 긁어모아 작품을 싣고 갔다. 당시 작품을 실을 용달비는 갈 돈만 있고 올 돈은 없었다. 거부하면 버리고 오겠다는 각오였다. 그런데 이 사장이 그림을 보더니 전속작가로 허락을 했다.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사석원에게 화가란.
▲아프리카 사막을 건너가는 거북이들을 본 적이 있다. 느린 걸음으로 사막을 건너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했다. 화가들의 삶은 녹록지 않은 예술의 길을 힘들게 헤쳐 나가는 느린 거북이와 같다. 화가는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회적으로 힘들 때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고민했다. 이번 전시는 불황으로 지친 이들에게 힘이 되고 한번쯤 웃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시가 끝나면 또 새로움을 찾기 위해 다시 아프리카로 떠날 계획이다. 앞으로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언젠가 묵화를 할 것이다.
그의 작품은 두려움 없는 대담한 붓질로 역동적이다.
유쾌하고 경쾌하게 표현되어 동화 같기도 하지만 온몸의 태엽을 한번 감아주듯 응집된 에너지가 전달된다. 튄들 어쩌랴. 순수한 날것 그대로의 생동감 넘치는 원색조와 의도하지 않는 형태미학은 자유로움과 기운생동을 더욱 부추긴다. 사석원 16회 개인전 '하쿠나마타타'는 24일부터 부산 중동 가나아트 부산, 26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4월 18일까지 열린다./hyun@fnnews.com 미술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