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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반야월선생 “친일행적, 후회하고 사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6.09 14:25

수정 2010.06.09 14:07

유정천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아빠의 청춘, 울고넘는 박달재 등 수많은 전통가요 대표곡의 가사를 쓴 국내 가요계의 독보전 존재 반야월 선생(93세·본명 ‘박창오’)이 9일 자신의 일제시절 강요에 못이겨 이뤄진 친일 행적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반 선생은 9일 한나라당 이주영(경남 마산) 의원이 국회에서 개최한 초청 간담회에서 “가수 1세대 중 저 혼자 남았다. 활동이 같이한 58명의 동료 작사가·작곡가·가수는 모두 지하에 잠들어 있다”고 한 뒤 “그때(일제강점시대)는 어떻게 할수 없었고,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다. 정말 유감이다. 지금도 (그때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
국민들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일제 말기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 강요에 의해 가사를 개작할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의 고뇌를 솔직담백한 어조로 밝혔다.

반 선생은 “일제 말기 상황은 전시체제였고, 온갖 강압과 굴욕이 강요된 시대였으며 예술가들이 양심적으로 일제에 협력한 경우는 없었으며 대부분 마지못해 협력했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군국 가요 등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잘못된 길로 내몰아졌다면 그분들께 폐를 끼친 만큼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면서 “친일 행적의 과(過)보다는, 국가를 위해 공(功)이 많은 훌륭한 분들이 많다”며 “그들을 함부로 외면해선 안 되며 이제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솔직한 평가를 통해 용서와 화합의 길을 열어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친 딸이자 가수인 박희라 한국전통가요사랑뿌리회 여성회장은 “당시 작가적 책임감과 레코드 취입, 노래 녹음 등을 차질없이 하기 위해선 많은 가수들을 보호해야 하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간담회를 주최한 이주영 의원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굴곡의 역사의 중심에서 마지못해 한 일이었지만 많은 후회와 유감, 용서를 빈 반 선생의 고백을 존중한다”면서 “이젠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반 선생은 1917년 마산 출신으로 ‘진방남’이란 이름으로 가수활동을 한 바 있으며 ‘이별의 부산정거장’과 ‘굳세어라 금순아’ 등을 작곡한 고 박시춘 선생, ‘목포는 항구다’를 부른 가수 고 이난영 씨와 더불어 한국 가요 1세대를 대표하는 ‘3대 거성’으로 일컬어진다고 이 의원측 은 전했다.


반 선생은 일제 강점시절인 1939년 태평레코드 전속 가수로 활동할 당시, 일본이 농민과 가난한 소작농들을 침탈해 만주로 강제 이민을 보내자 ‘못살아 버린 고향 쫓겨난 그 고향을, 가슴에 안고 가네, 기적도 울고 가네’라는 내용의 ‘새 고향 북경차’ 노래의 가사를 지었고, 결국 이 때문에 일본 측으로부터 ‘저항가요’로 낙인이 찍혀 많은 고초를 겪은 바 있다.

또 꽃마차, 만리포사랑, 무너진 사랑탑, 산장의 여인, 소양강처녀, 내고향 마산 등이 잘 알려진 곡이며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5000여곡의 노래를 작사하고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낸 작사가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자신이 지은 노래의 가사를 지금까지도 전부 기억할 만큼 뛰어난 기억력을 소유하고 있다.

/haeneni@fnnews.com정인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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