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극은 1년간 50부작으로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NHK 대하드라마를 필두로 6개 방송사에서 시즌별로 틈틈이 방송하기 때문에 한국에 비해 숫적으로 많은 편이다. 그리고 구성이나 전개가 탄탄한 편이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일본 사극을 보면 정말 많이 출연하는 배우가 있다. 그것도 조연이 아니라 주연으로 늘 등장하는 이 배우는 바로 마츠다이라 켄(57)이다. 기골이 장대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는 용맹한 장군이나 사무라이 전문으로 유명하다. 특히 아사히 TV에서 1978년 처음 방송된 ‘못 말리는 장군’은 큰 인기를 얻어 2004년까지 방송횟수 831회를 세는 장수 프로그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극 전문 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이 고민이었던 듯 그는 2004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기도 했는데, 당시 뛰어난 언변과 간간히 선보인 수준급 노래 실력이 주목을 끌게 됐다. 이어 같은 해 팬 미팅을 겸한 개인 콘서트에서 화려한 의상과 코믹한 춤을 곁들인 노래 ‘마츠켄(마츠다이라의 애칭) 삼바’를 선보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당시 ‘마츠겐 삼바’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이듬해 초 뉴욕 타임즈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을 정도다. 이 ‘마츠겐 삼바’는 지금까지 3탄이 나왔으며 마츠다이라 켄이 매년 콘서트를 열 때마다 늘 마지막 곡으로 관객과 함께 부른다.
극단 출신인 만큼 마츠다이라 켄은 젊은 시절 연극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TV에서 인기를 얻은 뒤에는 그다지 출연 기회가 많지 않았다. 1990년 연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끝으로 콘서트를 제외한 무대에서 떠났던 그가 2008년 뮤지컬 ‘드라큘라 전설, 천년애’로 18년 만에 무대에 서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드라큘라 전설, 천년애’는 일본의 영화 및 공연 제작사로 유명한 토호가 만든 것으로 계열사인 다카라즈카에서 주로 활동해온 작가 다카하시 치카에, 작곡가 아오키 아사코, 연출가 후지이 다이스케로 크리에이티브팀을 구성했다.
한국에서 뮤지컬 ‘드라큘라’는 카렐 스보보다가 작곡한 동명 체코 버전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일본에서는 브람 스토커 소설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든 것이다. 한국의 경우 세계적인 고전이나 영화를 연극이나 뮤지컬로 새롭게 만드는 사례가 거의 없지만 일본은 반대다. 예를 들어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영화 <로마의 휴일>의 경우 일본에서 각각 1970년대와 1990년대에 토호에서 뮤지컬로 제작된 바 있다. 특히 <로마의 휴일>은 올해 연극으로도 다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어쨌든 일본의 ‘드라큘라 전설, 천년애’는 현대적으로 각색한 체코 뮤지컬 ‘드라큘라’에 비해 원작 소설에 가까운 편이다. 특히 드라큘라 백작과 아드리아나의 사랑을 강조한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동명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다. 다만 드라큘라가 불사의 죽음을 가지게 된 이유로 괴테의 ‘파우스트’퍼럼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금서(禁書)를 열어 악마인 메피스토와 거래를 했기 때문이라는 설정이 추가됐다.
2008년 초연 당시 이 작품은 오사카와 도쿄에서 열흘 정도 밖에 공연을 하지 않았는데도 드라큐라 백작으로 출연한 마츠다이라 켄의 인기 때문에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올해 2년만에 규모를 키우는 등 작품을 업그레이드시켜서 앙코르 공연에 나선 것이다. 출연진의 경우 마츠다이라 켄만 그대로 기용하고 아드리아나나 반 헬싱 교수 등 다른 역은 새롭게 교체했다.
솔직히 중후한 마츠다이라 켄은 야수성과 낭만성을 동시에 갖춘 드라큐라 백작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직접 목을 깨물어 피를 빠는 장면은 아예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드라큘라 백작은 야성적인 흡혈귀라기보다는 매우 점잖은 신사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상대역인 아드리아나 역시 신사에 어울리는 지적이고 교양있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다.
기존의 소설이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드라큘라의 이미지와 다르지만 이 작품은 마츠다이라 켄을 앞세워 일본 중년 여성을 앞다퉈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토호는 처음부터 흥행을 예상한 듯 4∼5월 도쿄를 비롯해 전국 7개 도시에서 이 작품의 순회공연을 가졌고, 결과는 매진 사례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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