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러 나라의 국민이 왜 행복한지는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다. 학교에서 사회생활 공부하고 커서 신문 열심히 읽고 더 커서 직접 그 나라를 여행해본 사람이면 저절로 알게 된다.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 발달된 사회복지와 공공질서의 확립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등이 행복의 기본 조건이자 바로 이들 나라의 특색이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난데없이’ 중미의 코스타리카가 뉴질랜드와 더불어 공동 6위에 랭크된 이유는 무엇일까. 코스타리카는 면적 5만㎢에 인구는 410만명 정도 되는 작은 나라다. 자연자원은 풍부하지만 아직은 커피와 과실수 농업 등이 주산업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6000달러 수준이다. 이런 나라가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쪽은 태평양, 동쪽은 카리브해를 끼고 있어 풍광이 명미해서일까.
아마 그게 아닐 것이다. 코스타리카를 소개할 때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정치적 안정’이다. 코스타리카의 정체(政體)는 한국과 비슷하다. 단원제 국회이고 의원 정수는 57명. 직선제 대통령은 4년 임기에 연임은 안 되지만 재선은 허용된다. 1954년부터 국민해방당과 기독사회통합당이 민주적으로 정권을 교체하고 있다. 올 2월엔 사상 처음으로 여성인 라우라 친치야 미란다 대통령이 당선됐다. 8개국으로 구성된 중미통합체제(SICA)의 중심국이다. 이 나라를 중미의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치가 안정된 곳에서는 국민의 삶도 안정되고 보람차게 마련이다. 갤럽은 이번 조사에서 코스타리카의 예를 들어 행복의 기준을 다시금 정의한다. “경제적 부(富)뿐만 아니라 개인의 심리·사회적 욕구가 얼마나 충족되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코스타리카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인간관계의 네트워크가 긍정적으로 형성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한다.
2005∼2009년에 걸쳐 실시한 이번 조사의 주요 포인트는 두 가지 설문에 있다.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를 알아보는 ‘인생 평가’와 조사 전 하루 동안의 행복도를 묻는 ‘일상 경험’의 두 항목이다. 2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40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삶의 만족도 문항에는 다음과 같은 설문이 있었다. “어제 했던 일이 즐거웠습니까.” “최근의 일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배웠나요.” “당신의 생활이 자랑스러웠습니까.”
코스타리카 국민이 이런 종류의 사적인 질문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답했기에 행복 순위가 세계 6위인지는 과문의 탓으로 잘 모르겠다. 그러나 같은 질문을 한국인에게 했을 때 얼마나 시큰둥하게 답했기에 행복 순위가 56위로 내려갔는지는 짐작할 만하다. 아마 “그런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전혀 안돼 있소이다”하거나 “귀찮다, 귀찮아”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하기에는 요즘 한국인의 삶이 시쳇말로 너무 팍팍한 게 아닐까.
어쨌거나 정치적 안정도가 국민의 삶에 대한 긍정적 답변을 도출해 냈다면 한국인의 부정적 답변은 정치적 불안정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짐작은 아주 논리적이다.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을 대표하는 비유로 과거에는 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게 정치라고 하더니 요즘엔 국격을 떨어트리는 게 정치라고 한다. 국회에서의 난투극이나 의회주의의 부정 그리고 정당끼리 벌이는 치졸한 억지와 배타적·부정적 정서 그리고 야비한 설전(舌戰) 등이 한국 정치의 대표적 이미지라고 보면 틀림없다.
오늘 8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재·보선이 실시된다.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에선 한나라당이 압승하고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선 민주당이 대승했다. 오늘 재·보선에서 어느 당이 이기건 이것으로써 17대 대통령과 18대 국회의 주요 정치 일정은 모두 마무리된다. 이제 정치권에 남은 일은 국민의 행복도를 한껏 높이는 일뿐이다. 정치인 여러분 그렇지요? 뭐라고, 그럴 준비가 전혀 안돼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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