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고작 한두 번 외국에 나가는 이들에게 면세점 쇼핑은 특별하면서도 까다로운 경험이다. 별도의 세금을 내지 않고 구입할 수 있는 한도는 400달러. 하지만 이 정도 금액으로 살 수 있는 제품은 화장품, 선글라스, 스카프, 넥타이뿐이다.
유명 브랜드 가방 등 고가 명품을 원한다면 3000달러 내에서 구입한 뒤 세금을 따로 내는 방법도 있다. 이때 적용되는 세금은 물건 값에서 400달러를 뺀 금액에 20%를 곱한 것이다. 이 방법을 두고 ‘세금을 물더라도 면세점이 싸다’ 혹은 ‘백화점에서 제 값 주고 사는거랑 같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인기 상품 가격만으론 결정 힘들어
흔히 갖는 의문은 ‘백화점과 면세점 제품이 같을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다만 백화점과 면세점을 찾는 손님이 다르다 보니 제품 구색이 다를 순 있다.
대표적인 예가 남성 지갑이다. 남성 지갑은 흔히 동전 지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는데 면세점에는 전자가, 국내 백화점에는 후자가 주로 진열돼 있다.
이는 국가별로 동전이 갖는 가치가 달라 벌어지는 일이다. 일본 남성은 동전을 꼼꼼히 챙기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100엔짜리 동전 하나가 1400원 이상의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남성은 동전을 귀찮게 여겨 지갑에 잘 보관하지 않는다. 인천공항 면세점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직원은 “한국 손님은 동전 지갑이 있는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면서 “동전 지갑이 달린 제품의 주고객은 일본 남성”이라고 설명했다.
1층 일반 매장에서 품절된 상품이 10층에선 전면에 전시되기도 한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1층에 입점한 프라다는 올 하반기 주력 상품으로 내놓은 요요백(체인 장식 올 블랙 모델)이 출고와 함께 동이 났다고 밝혔다. 이 제품은 현재 전국 백화점에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반면 이 건물 10층 면세점에 입점한 프라다 매장에 가면 해당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격은 174만원. 1층에서는 201만원을 불렀던 제품이다.
여성들이 가장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면세품은 화장품이다. 대표적인 인기 품목인 에스티로더 갈색병 에센스(50㎖)는 4일 잠실 롯데백화점에서 14만5000원에, 같은 날 면세점에서는 11만690원(환율 1141.03원 기준)에 판매 중이었다. 이 같은 가격 차이를 두고 면세점 직원은 “VIP 카드를 만들면 5% 할인을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했고 백화점 직원은 “6종의 샘플을 무료로 주는데 면세점은 그런 혜택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같은 제품이 120만원이나 차이?
A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평소 눈여겨본 명품 시계를 구입하기 위해 L면세점을 찾았다 “3000달러가 넘는 제품이라 구입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제품은 일주일 전만 해도 2940달러에 팔리고 있었다.
결국 A씨는 해당 제품을 백화점 일반 매장에서 구입했다. 가격은 514만원. 당초 예상한 금액이 약 336만원(2940달러, 환율 1141.03원 기준)이었으니 178만원가량이 더 든 셈이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이튿날 A씨는 같은 시계가 J면세점에서는 2940달러에 팔리고 있음을 알게 됐다. A씨는 ‘2940달러짜리를 왜 3000달러가 넘는다고 말했는지’ 강하게 항의했다. 이에 L면세점 직원들은 2940달러에 나온 제품은 한 시즌 지난 제품이고 514만원에 구입한 A씨의 제품은 신제품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매장에서 수차례 3000달러가 넘지않는 제품을 찾는다고 말했지만 직원들은 ‘그렇게 싼 제품은 없다’며 오히려 면박을 줬다”면서 “그때 한번이라도 재고를 점검했다면 굳이 비싼 신상품을 구입할 필요가 없지 않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이 일로 A씨는 얼마나 손해를 봤을까. 예정대로 2940달러짜리를 샀다면 여기에서 400달러를 뺀 2540달러에 대한 세금을 추가로 내면 된다. 세금은 최대 20%이니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환율 1141.03원 기준) 약 58만원이다. 시계값 336만원(2940달러, 환율 1141.03원)에 세금 58만원을 더하면 394만원, 결국 514만원을 낸 A씨는 120만원가량 예상 외의 지출을 한 셈이다.
물론 면세점 측도 할 말은 있다. 면세점 관계자는 “디자인이 더 세련돼졌고 금이 더 들어가서 비싸진 것”이라면서 “514만원짜리는 면세점 가격도 3500달러 선에서 책정됐다”고 설명했다.
/wild@fnnews.com박하나기자
■사진설명=1년에 한두번 해외에 나가는 이들에게 면세점 쇼핑은 특별하고 어렵다. 해외 명품을 20∼30%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지만 면세한도 범위와 제조연도 등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해외 출국을 앞둔 이들이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쇼핑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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