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나 전설 속 이야기는 비틀어보는 재미를 담기 좋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도 있거니와 잘 알려진 이야기가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는 모티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패러디와 풍자가 대중에게 인기를 누리는 이유다.
최근 막을 올린 코미디 뮤지컬 '스패머랏'도 이런 파격이 흥미로운 사례다. 이 뮤지컬이 차용하고 있는 신화는 바로 '아서왕의 전설'이다. 원탁의 기사가 사실은 오합지졸이었고, 랜슬러트는 동성애자였으며, 로빈은 겁쟁이라는 별스럽고 재미있는 상상이 작품의 기본 전제다. 물론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요즘 세계 공연가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화가 원작인 뮤지컬, 즉 무비컬이다. 1975년 영국의 6인조 남성 코미디그룹인 몬티 파이튼이 만든 영화가 시발점인데, 원래 제목은 '몬티 파이튼과 홀리 그레일'이었다. 아서왕이 성배를 찾아 모험을 펼치는 내용으로, 온갖 종류의 해학, 패러디, 영국식 유모로 치장해 엽기나 컬트를 좋아하는 관객들로부터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무대용 콘텐츠로 탈바꿈되면서 뮤지컬 제목은 '스팸어랏'으로 변경됐다. 아서왕이 살았다는 전설의 성 '캐멀럿'에 고기 통조림을 의미하는 '스팸'을 말장난처럼 집어넣었다. 원작자인 몬티 파이튼이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스팸'을 자주 개그의 소재로 활용하던 데서 기인한 제목이다. 말 자체로만 풀어 보면 '스팸 많이(spam-a-lot)'라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뮤지컬은 영화의 단순한 무대적 재현에만 머물진 않았다. 풍자와 해학의 맛을 살려 그만의 익살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기본 줄거리는 영화와 같지만 각각의 장면은 폭소가 터져나오는 해학이 넘쳐나게 됐다. 브로드웨이의 히트 뮤지컬들을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고, 배꼽 잡는 노랫말들을 더했다. 뮤지컬은 2005년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 1500여회의 공연에 2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1억7500만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우리말 공연 소식이 알려지면서 여러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영미권의 유머 코드가 우리 관객들에게 어필될 수 있는가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린 지금,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개그맨보다 웃긴 탤런트라는 박영규나, 개그맨 출신인 정성화의 연기도 안정적이지만 쉴 새 없이 대사를 쏟아내며 익살을 이어가는 조연들의 연기가 한국식 적용을 완성해낸 느낌이다. 쌉싸래한 뒷맛도 빠트리지 않았다. 스타가 없으면 흥행이 안 된다는 2막의 장면에서는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뮤지컬에서 코미디는 원래 가장 인기 있는 장르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니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으면 좋겠다. 많이 웃고 나면 가을 정취도 더 행복하게 보일 것 같아 즐겁다.
/원종원(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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