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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만드는 사람들] 12월 ‘아이다’ 개막 앞둔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11.18 16:56

수정 2010.11.18 16:56

"아이다가 안되면 되는 뮤지컬이 뭐가 있겠어요."

그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국내 대표적인 뮤지컬 제작사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48). 해남 촌놈 출신이라며 허허 웃지만 그가 걸어온 28년 무대 인생은 간단치 않다.

■'산불'에 웃고 울고

순전히 '산불' 때문이다. 무대로 그를 끌어들인 것도, 최고 정점에 서 있던 그를 수렁에 빠뜨린 것도. 1979년 봄. 까까머리 고등학생이던 박 대표는 '빛고을' 광주의 한 낡은 극장 구석에 앉았다. 차범석의 연극 '산불'을 보기 위해서였다.
공산당이라면 무조건 때려잡는 게 정답이던 시절, 극의 내용은 충격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여자들만 남겨진 마을에 낙오된 북한군이 숨어든다. 마을의 두 여자는 순식간에 그와 사랑에 빠진다. 가슴을 졸이며 극에 빨려드는 순간, 그의 가슴엔 펑 불꽃이 터졌다. "배우가 되자."

학교를 졸업하고 제대 후 스무살, 무작정 서울 대학로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연극판에서 온갖 허드렛일만 2년을 하다 겨우 단역을 따냈지만 정작 배우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연출·기획으로 방향을 틀었고 결국 그를 붙잡은 건 프로듀서 일이었다. 앞만 보고 달리는 불도저 스타일에 특유의 소탈함이 프로듀서 역에 딱이지 않았을까. 런던과 뉴욕에선 '브로드웨이 박'으로 통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현지와 라이선스 계약을 해 국내 무대로 해외 흥행 대작들을 공수해 왔다. '맘마미아' '아이다' 등이 그런 작품이다.

최고의 흥행 프로듀서로서 명성을 쌓아가던 2007년. 그는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다. 연극 '산불'의 뮤지컬 버전 '댄싱 섀도우'를 무대에 올린 것이다. 7년여의 산고 끝에 막을 올렸지만 결과는 대참패였다. 창작뮤지컬로는 유례없는 50억원의 제작비를 쏟아붓고 25억원이 넘는 빚만 고스란히 떠안았다. 주변에선 뜯어말렸지만 그는 무대 세트를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세트를 운반해 소각하는 데만 든 비용이 600만원이 넘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었어요. 배운 게 오히려 많았습니다. 그때의 실패는 제 인생의 중간평가였다고 봐요. 더 냉정해졌고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줬으니까요. 그 뒤 좋은 작품이 더 많이 나왔잖아요. 그러니 소중한 경험이었던 거죠. 하하."

■박 대표의 '세바퀴'

박 대표는 지금 세 종류의 큰 바퀴를 굴리고 있다. 가장 큰 바퀴는 여전히 막만 올리면 관객이 밀려드는 흥행 대작들. 그는 더 이상 해외 라이선스 작품은 국내에 들일 계획이 없지만 현재 보유 중인 신시컴퍼니의 대형 해외 레퍼토리는 매번 업그레이드해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맘마미아, 아이다, 시카고, 헤어스프레이, 이런 뮤지컬은 전 연령층이 즐기는 작품이에요. 언제든 흥행 가능성이 높습니다. 20∼30대를 타깃으로 하면 한계가 있어요. 중년층이 관객으로 흡수돼야 롱런이 됩니다."

다음 달 14일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개막 예정인 '아이다'를 두고 박 대표의 찬사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무대 메커니즘이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확신합니다. 무대, 조명, 의상이 탁월해요. 아이다는 장치와 조명의 쇼라고 할 수 있어요. 4초마다 조명이 바뀌는 신도 있습니다. 관객을 홀릴 만한 재료가 무궁무진해요. 무대를 세팅하는 데 6주가 걸리는 작품입니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거든요. 이런 장치들 때문에 자주 공연을 못하는 겁니다. 5년 만에 공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이번 무대는 초연보다 완성도가 높을 겁니다. 주인공을 옥주현 원캐스트로 가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이에요. 원캐스트로 오히려 밀도 높은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어요. 초연 때 음악감독이었던 박칼린이 연출을 맡은 것도 다른 점이죠."

'아이다' 같은 해외 대작이 지금의 신시를 있게 해준 브랜드라면 '정통 연극'과 '창작뮤지컬'은 미래의 신시다. 박 대표가 한창 공들이고 있는 그의 두 번째, 세 번째 바퀴. 박 대표는 연극이 신시의 주요 동력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 올해 제작한 '엄마를 부탁해' '대학살의 신' '33개의 변주곡' 등의 연극은 그 나름대로 개성을 발휘했다. 신시 연극의 공통점은 '최소 중극장용-검증된 연출진-탄탄한 원작' 대충 이렇다. 박 대표는 내년엔 연극 제작에 더 속도를 낸다. "거품 낀 뮤지컬 시장에 회의를 느끼면서 연극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어요. 기초예술로 돌아가 맷집을 더 탄탄히 하자는 생각이었죠.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

2년 전부터 작업해 온 창작뮤지컬은 내년 이후 봇물처럼 쏟아진다. 내년 5∼6월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공연될 '엄마를 부탁해'를 비롯, 여성 국극인 임춘앵의 일대기를그린 '춘앵전' 등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콘텐츠는 '우리 것'이에요. 한국적인 것을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가슴을 파고드는 근사한 창작물 한편이 나오지 않을까 꿈꾸며 살고 있어요."

/jins@fnnews.com최진숙기자

■사진설명=4초마다 바뀌는 조명, 강렬한 색감, 극적인 스토리. 뮤지컬 '아이다'는 관객을 홀릴 만한 재료가 무궁무진하다며 환하게 웃는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사진=서동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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