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11시20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1층.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30대 그룹 총수들이 이명박 대통령 주재의 ‘수출·투자·고용 확대를 위한 대기업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굳은 표정을 한 채 빠른 걸음으로 입장했다.
이 대통령 도착에 앞서 20여분 전에 등장한 총수들의 표정엔 긴장감이 묻어났다. 평소 기자들에게 몇 마디 정도 해주던 총수들도 이날은 가급적 말을 아끼며 행사장으로 향했다.
재계에선 이번 회동이 청와대가 아닌 전경련에서 이뤄진 데 대해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의 전경련 방문은 성장과 고용 확대에 대해 재계가 더욱 성의있는 방안을 내놓도록 압박하는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며, 2시간여에 걸친 대화를 통해 대통령의 의중을 확실히 전달하고 재계의 입장도 전해받았을 것으로 관측된다. 전경련 관계자는 “청와대가 아닌 전경련을 회동 장소로 정한 것은 대통령이 재계에 더욱 확실히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재계에 대해 ‘당근’과 ‘채찍’ 전략을 번갈아 구사하며 고용과 투자확대에 동참할 것을 주문해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인사회 열흘 만에 ‘긴급투자 및 고용 관련 간담회’를 열어 재계에 고용과 투자 확대를 주문했다. 이후 지난해 9월 청와대 회동에선 “총수들이 마음 먹으면 동반성장 하나 못하겠느냐”는 질책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올해 1월 5일 대한상의 주최 경제계 신년회에서 “재계 총수의 신년사를 관심있게 읽었다. 나는 친기업인”이라는 덕담과 함께 “정부도 규제 완화와 친환경 미래사업 연구개발(R&D) 지원에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해, 다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긴장감 속에 치러진 이날 분위기는 전에 없이 좋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가 끝난 후 총수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으로 걸어나왔다.
회의에 참석한 이수영 OCI 회장과 이희범 경영자총협회 회장(STX에너지·중공업총괄 회장)은 “분위기가 좋았다”고 자평했다.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은 회의 직후 기자와 만나 “회의 마지막에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가 기업에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자문해 보겠다”고 언급한 부분을 소개했다. ‘기업의 역할론’과 함께 ‘정부의 역할론’도 함께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또 “우리 기업들이 우수한 기업에서 (국민에게)사랑받는 기업이 돼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년회 이후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한 삼성, 현대차, LG, SK그룹 등 4대 그룹들은 이날도 대정부 협력 무드를 이어갔다. 대기업 총수들은 이날 회의 직후 전경련을 통해 사상 최대 규모인 113조2000억원 투자, 11만8000명 신규고용 등을 취합해 발표했다. 전경련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기업 간담회에서 구체적 목표치를 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회의에선 수출 촉진, 고용확대에 이어 최근의 물가안정 등도 심도있게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연초부터 심상치 않게 오르고 있는 물가를 잡기 위해 정유사, 식품업계 등을 상대로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날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의 ‘도시락’ 회동에서 나온 결과가 성장과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hcho@fnnews.com조은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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