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시장 개척만이 자구책이라는 생존전략이 발동한 것이다. '꽃보직'으로 불리던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전문경영인들이 들어와 해외 세일즈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구나 공기업들의 해외진출 행보는 개발원조, 기술이전, 문화전파를 통해 선진국 대열에 선 우리 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데다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에 먼저 진출해 민간기업에 투자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개발 지원·일감 확보 '두 토끼' 잡기
한국의 공기업들은 낙후된 개발도상국의 인프라를 원조 성격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이를 통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중장기 경영목표를 '물산업 분야 세계 1위 글로벌기업으로의 도약'으로 잡고 해외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water는 2006년 인도 NEC사가 발주한 리킴로 수력발전소 운영관리 기술지원 사업 수주를 시작으로 현재 12개국에서 14개 사업을 수행 중이다. 앞으로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을 비롯한 물 부족 국가를 겨냥해 상하수도 분야 입찰·제안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필리핀 등 잠재 수자원이 풍부한 동남아 지역에 수력발전·전력시장 개발사업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신도시수출 관련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한다는 각오다. LH의 경우 단기간에 고품질의 대규모 신도시를 다수 건설한 경험이 개발도상국들에 매력을 주고 있다. LH는 경영난 문제로 당장은 직접투자보다는 기술 및 정보 지원을 중심으로 자리를 닦아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대한지적공사도 국내 지적공사의 측량수량(건수)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를 보이면서 해외사업 다각화를 통한 활로를 모색 중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05년 중국철도 감리사업을 수주하면서 한국철도공사, 서울도시철도공사 등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 철도시설공단은 지난 2009년 카메룬 국가철도마스터플랜수립 용역을 수주한 데 이어 최근에는 브라질 등 세계 각국 철도건설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9월 영국의 석유탐사업체 다나 페트롤리엄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공기업이 해외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한 적은 지금껏 없었다. 민간기업까지 포함해 3조원이 넘는 규모의 적대적 M&A는 전례가 없던 일이다. 해외시장 공략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영토를 북극까지 넓혔다. 지난 1월 캐나다 MGM사로부터 우미악 가스광구의 지분 20%를 인수한 것. 발견잠재자원량은 3470억입방피트(액화천연가스 환산 729만t)에 달한다. 국내 기업이 북극권 자원개발에 진출한 것은 가스공사가 처음이다.
■민간기업 해외 진출 '견인차'
공기업의 해외진출은 먼저 공기업이 진출해 신뢰도를 바탕으로 활로를 뚫고 민간 기업들의 진출을 견인하는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발전 공기업인 한국남부발전은 STX중공업과 이라크의 발전 사업에 공동으로 진출키로 하고 지난달 28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들 두 회사는 앞으로 이라크 지역에서의 발전설비 수주 활동을 공동으로 진행하게 된다. STX중공업 관계자는 "시공과 운영이라는 두 회사의 장점을 극대화함으로써 수주경쟁력을 확보하고 역할 분담을 통해 사업추진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남동발전도 지난달 18일 삼성중공업과 손잡고 유럽 신재생에너지 기업인 인발사와 폴란드 풍력발전 공동개발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폴란드 북부 발트해 지역에 85㎿ 규모의 풍력단지를 건설하는 이 프로젝트에는 인발사가 전체적인 개발을 담당하고 삼성중공업이 발전기와 기계공사, 남동발전이 운영을 각각 맡게 된다.
한국전력공사, 현대종합상사, 현대엔지니어링 등 3사도 공동으로 카자흐스탄 전력망 현대화 사업에 나선다. 이번 프로젝트는 17개 변전소의 노후 전력설비를 교체하는 것이 핵심으로 지난 2월 말 이들 3사와 카자흐스탄 송전망공사(KEGOC)는 1억달러 규모의 공사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전력은 컨소시엄의 주관사로서 전체적인 사업 관리를 맡고 현대엔지니어링과 공동으로 설계·구매·조달(EPC)업무를 수행할 계획이다.
특히 이들 3사는 곧바로 KEGOC와 카자흐스탄 내 신규 수력발전소로부터 연결되는 220㎸ 송전선로 327㎞를 건설하는 사업을 4600만달러에 수주해 관련 업계로부터 "3사간 시너지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국전력 해외사업운영처 김세현 송변전사업팀장은 "한국전력, 현대종합상사, 현대엔지니어링 등 민관이 힘을 합쳐 프랑스 아레바, 스위스 ABB 등 세계 유수의 회사들을 제치고 프로젝트를 따낸 모범 사례"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김성환 강두순 홍창기 유현희 강재웅 이병철 이유범 유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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