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크게 세 가지 오류가 관찰된다. 첫째 구체적인 복지시책의 도입보다 더 시급한 선결과제가 있다는 사실이 인지되지 못하는 점, 둘째 복지시책의 확대에 따른 비용과 혜택의 향유를 누가 하는지를 식별하는 노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 셋째는 복지의 시혜가 집단 중심이 아닌 개인 중심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사실이 인식되고 있지 못하는 점이다.
국민의 세 부담 증대를 통해 복지사회 건설을 도모하기 이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는 복지정책의 추구 이전에 사회제도와 기본질서의 확립을 통해 국민 각자가 자신의 업무에서 보람을 찾고 장래에 대해 밝은 희망을 가지며 자신이 열심히 일해 얻는 경제적 과실을 향유하며 만족하고 보람을 갖는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건실한 자본주의 경제에서 승리하는 자는 성실·근면·절약·신용 등의 덕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는 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떡과 떡고물을 주고받는 권력과의 결탁, 부동산투기의 만연, 불량품과 부정식품의 범람, 탈세, 불공정거래의 횡행, 국가에 대한 봉사보다는 개인의 영달에 빠져 있는 공직사회 등 사회의 기본질서가 파괴되고 경기의 규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군인과 민간인이 피격받아 죽고 군인과 경찰이 시위대에 의해 폭행당하고 고속도로와 광장이 불법 시위대에 의해 점령당하는 나라에서 복지가 무슨 의미를 갖는가.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을 존경하기는커녕 환멸하며 가진 자들의 경우도 떳떳하지 못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경기규칙의 확립을 통한 사회의 기본적 질서의 확립과 유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동되는 복지제도는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한다.
복지정책의 추구는 필연적으로 국민 부담의 증대를 수반하는데 일반 국민과 정책당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학자들까지도 이에 대해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무상복지 반값복지가 유행아닌 유행인데 어떻게 가능한가. 정부가 부담하는 재원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정부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 복지적 시혜를 베풀 수 있는 요술방망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정부의 부담은 외형적 표현이야 어떻든 그 구성원인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세금 부담이다.
특정 복지제도의 도입으로 누군가는 세 부담을 더하고 누군가는 혜택을 받기에 복지제도의 단순한 도입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복지 혜택의 배분과 복지 비용의 분담을 어느 소득계층이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의 논의에서 어느 정당이나 전문가도 이 점을 명시적으로 다룬 경우가 없다.
끝으로 집단보다 개인을 중심으로 정책이 논의돼야 한다. 흔히 국가의 정책이 농민을 도와주고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육성해야 하며 여성 대학생 근로자를 지원·보호해야 한다고들 한다. 정부정책에서의 배려 대상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잡을 경우 두 가지 결함이 나타난다. 첫째로 농민, 여성, 중산층, 근로자를 제외하면 대한민국에 남는 사람이 없으므로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지원을 받아야 된다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결론이 도출된다. 둘째로 농민, 근로자, 중소기업인 중에는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있지만 상당 수준의 소득을 얻는 사람들도 많이 있기에 집단을 대상으로 혜택을 부여하면 전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혜하기에 세금이 낭비된다. 급식이든 등록금이든 저소득층 학생에게나 무상이나 반값이 필요한 것이지 재벌 회장의 손자인 학생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복지정책의 수립에는 뜨거운 가슴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차가워야 할 머리까지 뜨거운데 있다. 복지에 대한 열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국민과 정책담당자의 머리는 차가워서 뜨거운 가슴이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시현할 수 있도록 보다 냉철한 머리에 의한 문제의 파악과 사실의 인식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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