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천시장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
하지만 선입견을 깨는 데는 단 하루면 충분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8월 27일∼9월 4일)의 도시 대구는 골목에도 재래시장에도 예술과 이야기가 배어나는 '색깔 있는 도시'였다. 따로국밥, 매운갈비, 납작만두, 막창 등 먹을거리 투어의 새로운 발견에 오감만족은 극대화됐다.
■역사를 따라가는 골목길 투어
대구는 유달리 예술가와 문인이 많았던 '문화 예술의 고장'이다.
'동무 생각'의 작곡가 박태준(1900∼1986)을 비롯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지은 시인 이상화(1901∼1943), '무영탑' '운수좋은 날'을 지은 작가 현진건(1901∼1943), 라이브의 가객으로 불린 가수 김광석(1964∼1996) 등 대구 출신의 문화 예술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구 바로 알기 역시 문화·예술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골목길 투어로부터 비롯된다.
가장 유명한 코스는 청라언덕에서 시작해 진골목에 이르는 약 2㎞ 구간. 대구 근대 문화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코스다.
'대구의 몽마르트'라 불리는 청라언덕은 박태준 선생의 '동무 생각'이 탄생한 배경이 된 곳이다. 계성학교 재학 시절 신명여학교 학생 유인경을 본 뒤 한눈에 반해 사랑을 키웠던 박태준이 훗날 '시조 시인' 이은상(1903∼1982)에게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털어놓다가 곡을 만들었고, 이은상이 가사를 붙여주면서 국민 가곡 '동무 생각'이 탄생하게 된 것. 청라언덕에 가면 지금도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동무 생각'을 합창하는 관광객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청라언덕에서 시작된 대구의 근대사 엿보기는 1899년 지어진 동산병원의 전신인 제중원을 비롯해 1898년 미국 선교사들이 지은 대구 지역 최초의 교회인 제일교회로 이어진다.
▲ 이상화의 벽화 골목 |
제일교회를 지나면 90개의 좁다란 계단이 이어진 3·1 운동길이 나온다. 대구 시민들이 만세운동을 막으려는 일본 순사들을 피해 시내 중심부로 달려 내려갔던 유서 깊은 곳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3·1 운동길을 내려오면 길 건너 계산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1899년 한옥으로 지어졌다가 1901년 지진에 의해 전소되면서 1902년 다시 세워진 계산성당은 사적 제290호로 지정된 곳으로 1950년 박정희 전 대통령(1917∼1979)과 육영수 여사(1925∼1974)의 결혼식이 올려지기도 했다.
성당 건너편 길로 조금만 발걸음을 떼면 검은색 외투에 중절모를 쓰고 뒷짐을 진 시인 이상화의 벽화가 그려진 골목에 다다른다. 곧이어 눈에 들어오는 이상화의 고택은 그가 1939년부터 임종할 때까지 거주했던 곳으로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상화 고택 맞은편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서상돈 선생(1851∼1913)의 고택도 자리하고 있다.
▲ 3·1운동 만세길 |
미로 같은 코스는 200여개의 한약방이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약령시 한방특구 골목으로 연결된다. 한약재 냄새가 진동하는 건강한 거리를 지나면 대구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진골목이 나온다. 진골목의 명소는 40년 된 미도 다방이다. 투박스러운 모양의 성냥갑부터 한잔에 2000원만 내면 수북하게 덤으로 따라나오는 과자 서비스까지… 미도 다방의 인심은 4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모든 게 그대로다.
관광에 시장 나들이가 빠질 수 없다. 대구를 방문한다면 꼭 한 번 들러봐야 할 곳이 방천시장과 서문시장이다.
1960년대 1000여개의 점포가 들어섰을 만큼 문전성시를 이뤘던 방천시장은 현재는 대형마트의 공세에 밀려 불과 60여개의 점포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예술인이 발길이 닿고 2009년 공공미술과 전통 시장의 만남으로 상권을 활성화시키려는 목적의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부터 그럴듯한 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이 사업이 진행되며 시장 곳곳은 그림으로 채워졌고 침체됐던 공간엔 다시 활기가 피어났다.
방천시장의 명소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다. 대구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방천시장에서 보냈던 김광석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이 길엔 김광석의 동상과 벽화가 골목길을 따라 추억처럼 이어져 있다.
서문시장은 대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래시장이다. 조선 선조 1601년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치되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서울, 평양과 함께 전국 3대 장터로 손꼽혔던 서문시장은 지금도 여전히 큰 규모를 자랑한다.
'없는 게 없다'는 서문시장은 수십년 된 단골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결혼을 앞둔 새 신부, 가방을 멘 중·고등학생까지 남녀노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골목도 많고 볼거리도 지천이어서 하루에 다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대구 10味를 아시나요?
▲ 대구 10미(味) 중 하나인 대구곱창 |
먹을거리 투어의 새로운 발견은 대구 관광의 최대 반전이다. 따로국밥, 소막창구이, 생고기(뭉티기), 동인동 찜갈비, 논메기 매운탕, 복어불고기, 누른 국수, 야끼 우동, 무침회, 납작만두 등 대구 10미(味)를 맛본다면 '대구 음식은 맛이 없다'는 선입견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대구를 방문해 가장 먼저 먹어봐야 하는 것은 따로국밥이다. 장국밥이나 설렁탕처럼 국물에 밥이 섞여 나오는 대신 국과 밥이 따로 나와 따로국밥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별미는 12시간이나 고아 만든 국물과 큼지막한 고기와 선지가 어우러져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대구의 또 하나의 별미는 납작만두다. 6·25전쟁 때 얇은 만두피에 당면과 부추를 넣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많이 먹었다는 납작만두는 만두라기보다는 부침개 같다. 잔뜩 기대를 했다가는 심심한 맛에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고춧가루와 식초, 설탕을 섞은 간장을 뿌려 먹으면 게눈 감추듯 동이 나 버린다.
매운갈비와 막창도 빠뜨릴 수 없는 대구의 먹을거리다.
보기에도 매워 보이는 빨간 양념으로 옷을 입은 매운갈비는 달짝지근한 갈비 맛에 익숙했던 사람에게는 다소 맵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중독성이 강하다. 고기를 건져먹은 뒤 국물에 비벼 콩나물과 함께 먹는 밥도 별미다.
'대구 최대의 막창 거리' 안지랑 곱창 골목엔 44개의 가게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곱창 한 바가지가 1만원, 막창은 1인분에 6000원으로 배불리 먹고도 지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다.
■대구 여행 정보
대구시는 올해 '2011 대구 방문의 해'를 진행하고 있으며 오는 11월 30일까지 34개 관광 안내소에서 응모권을 받고 관광명소 중 2곳을 방문해 스탬프를 받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자동차, TV, 노트북 등 2011개의 선물을 쏘는 이벤트도 펼치고 있다. 한편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맞아 27일부터 9월 4일까지 매일 오전 10시, 오후 2시에 골목 투어를 운영한다. 전화(053-661-2194)나 대구 중구 누리집(gu.jung.daegu.kr)에 신청하면 된다.
/easygolf@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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