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삶에서 행복의 근본 요소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려는 지치지 않는 욕심은 우리를 더 행복하고 삶을 만족으로 채우기보다는 유례없는 불평등과 채워지지 않는 갈망만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제 성장은 중요하다.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목표와 같이 추구될 때만 그렇다.
히말라야의 왕국인 부탄은 이 같은 관점을 선도하는 곳이다. 40년 전 막 즉위한 부탄의 젊은 네번째 왕은 경이적인 선택을 했다. 국민총생산(GNP)이 아닌 '국민총행복(GNH)'을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 나라는 경제성장만이 아니라 문화, 정신건강, 인정과 공동체 등에 집중하는 성스러운 대안 개발을 실험해오고 있다.
최근 전문가 수십명이 부탄의 수도 팀푸에 모여 그동안의 성과를 점검했다.
팀푸에 모인 우리는 국민소득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문제는 급속한 도시화와 매스미디어, 글로벌 자본주의, 환경 악화로 특징 지어지는 세계에서 어떻게 행복을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경제적 삶은 공동체, 신뢰, 지속가능한 환경 등의 측면에서 어떻게 재편될 수 있을까.
일부 해답이 있다. 우선, 경제발전의 가치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굶주리고 생필품이 부족하고 깨끗한 물, 의료, 교육 또 의미 있는 수준의 고용이 없으면 불행하다. 빈곤을 완화시켜주는 경제발전은 행복을 높이는 긴요한 계단이다.
둘째, 다른 목표들을 배제한 채 GNP만을 쉼 없이 추구하는 것 또한 행복으로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40년간 GNP가 급속히 증가했지만 행복은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GNP라는 단일 목표 추구는 부와 권력의 불균형 심화를 낳았고 저소득층을 크게 늘렸으며 수백만 아이들을 가난의 함정에 빠뜨렸고 심각한 환경파괴를 유발했다.
셋째, 행복은 개인과 사회 모두의 균형 잡힌 접근을 바탕으로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경우 생활필수품을 구하지 못하면 불행하지만 더 많은 소득추구가 가족과 친구, 공동체, 인정, 내적 균형 유지 등을 대체해도 역시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 사회의 경우는 생활수준이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을 짜는 것과 사회의 모든 가치가 이윤 추구에만 매달리는 것은 전연 별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기업 이윤이 공평과 정의, 신뢰, 육체적 정신적 건강과 지속 가능한 환경 등 다른 모든 목표들에 우선하도록 하는 정책을 점점 확대하고 있다. 기업들의 선거자금 기부는 미 대법원의 축복 속에 민주주의 과정을 점점 더 약화시키고 있다.
넷째, 글로벌 자본주의는 행복에 직접적인 많은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오염으로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있지만 석유산업의 끊임없는 선전선동으로 많은 이가 이에 대해 무지한 상태다. 언론은 기업들의 '의사전달' 창구가 돼 버렸고 상당수 언론은 반과학적인 것이 되었으며 미국인들은 점점 더 확산되는 소비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다.
패스트푸드 산업이 기름과 지방, 설탕, 기타 첨가물로 어떻게 비만을 부르는 식품에 대한 불건전한 의존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보라. 미국인 중 3분의 1은 이제 비만이다. 다른 나라들도 어린이들에게 중독성 있는 건강에 이롭지 못한 식품을 광고하는 것을 포함해 기업들의 위험한 활동을 제한하지 못하면 결국 미국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문제는 식품만이 아니다. 대량 광고는 공공의료 비용 급증으로 이어지는 과도한 TV 시청과 도박, 마약, 흡연, 음주 등을 포함한 다양한 소비자 중독에 일조하고 있다.
다섯째, 행복 증진을 위해서 우리는 GNP가 아닌 사회의 안녕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는 다른 많은 요인을 찾아내야 한다. 많은 국가가 GNP 측정을 위해서는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패스트푸드, 과도한 TV 시청과 같은) 건강을 악화시키고 사회의 신뢰를 저하시키며 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거의 돈을 쓰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요인들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행동에 나설 수 있다.
기업들의 광적인 이윤추구는 우리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경제성장과 개발을 추구해야 하지만 이는 오직 광의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즉 환경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신뢰에 필수적인 인정과 정직이라는 가치를 증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행복의 추구가 아름다운 산악왕국 부탄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정리=dympna@fnnews.com송경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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