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당신의 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00만달러 드리겠습니다." 현재 원화가치로도 10억원이 넘는 액수 아닌가. 리스트의 대답이 더 걸작이었다. "그 많은 돈을 제가 어디다 쓰겠습니까." 헝가리 출신 불세출의 이 피아니스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미 부와 명성에 별 욕심이 없었던 때다. 마흔의 리스트는 "더 이상 돈을 받고 피아노를 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한다.
생전 리스트는 전 유럽을 휘저은 영웅이었다. 그가 교류하는 이들의 면면은 일반인들의 상상 그 이상이다. 유럽의 웬만한 왕들과 귀족은 물론 교황과도 수시로 만났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로 무대 위에 서면 객석의 귀부인들은 넋을 잃었다. 연주가 끝나면 기절하는 관객이 속출했을 정도.
"리스트가 작곡한 곡은 1000곡이 넘을 겁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예요. 피아노곡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오케스트라곡, 합창곡, 성악곡 등 다양해요. 국내에선 헝가리 광시곡이나 연습곡 등 화려한 기교 위주의 곡들의 연주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리스트가 서른아홉 절정기에 피아노를 그만둔 뒤 작곡에 몰입한 후 발표한 곡들의 연주는 많지 않았어요. 그런 곡들을 모아봤습니다."
피아니스트 이대욱 한양대 교수(67).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리스트를 올가을 화두로 삼아 세 차례 리스트 파고들기에 나서는 연주자다. 금호아시아나재단의 '고전음악 작곡가 가이드' 시리즈 중 '리스트& 베토벤'으로 무대에 오른다. 지난달 22일 첫 공연에 이어 오는 13일과 다음달 17일 차례로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들려줄 곡은 지적이면서 철학적인 리스트 후기작품들이다. '순례의 해 제1년:스위스'로 첫 무대를 열었고 리스트의 피아노 인생이 집약된 '소나타 b단조'(13일),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11월 17일)'을 선사한다.
이대욱은 전형적인 학자풍 피아니스트다. 연구와 연주,이 두 가지가 그의 인생을 설명해주는 단어다.
"리스트 음악은 후반으로 가면 굉장히 래디컬한 양식이 많습니다. 현란한 기교보다 깊고 복잡한 심리상태를 드러낸 음악이 많아요. 동시에 현대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당시로선 생각해내기 힘든 화성, 선율이었습니다. 리스트는 20세기 현대음악의 시조예요.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은 아니지만 대신 빠져들면 굉장한 세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13일 연주할 '리스트 소나타'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리스트는 소나타를 딱 한 꼭 남겼습니다. b단조 소나타에요. 패기가 느껴지면서도 철학적이죠. 리스트의 가장 진지한 음악입니다.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한 번은 해내고 싶은 곡이 리스트 소나타예요. 피아니스트로서 기능과 예술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곡이니까요. 서양음악예술의 가장 승화된 모습을 그 곡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리스트는 슈만, 쇼팽 등과 동시대 작곡가다. 리스트보다 한 살 많은 쇼팽은 리스트의 소개로 조르주상드를 알게 됐다. 쇼팽의 사후 그의 전기를 쓴 최초 작가가 리스트다. 쇼팽과 동갑인 슈만은 리스트에게 '환상곡'을 헌정했다. 화답으로 리스트는 슈만에게 '소나타 b단조'를 헌정한다. 유명 작곡가들과 얽힌 이야기는 숱하지만 리스트에게 결정적이었던 작곡가는 역시 베토벤이다.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에게서 레슨을 받던 열 살 신동 리스트는 체르니의 주선으로 마흔 살 위 베토벤과 역사적인 조우를 한다. "대단히 재주있는 아이다." 베토벤의 이 한마디를 리스트는 평생 가슴에 뒀다. "피아니스트들이 치기 어려운 베토벤의 곡들을 리스트는 서슴없이 연주했어요. 지휘자로 활동할 때도 가장 많이 지휘한 곡이 베토벤의 아홉 개 교향곡이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리스트는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했죠. 리스트 소나타는 베토벤 소나타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리스트를 알려면 베토벤을 알아야 합니다."
이대욱의 연주회 타이틀이 '리스트&베토벤'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베토벤의 곡은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게 이 교수의 소신이다. 13일 연주회의 부제는 '소나타의 진화'다. 베토벤의 '소나타 30번' '소나타 31번'을 '리스트 소나타'에 앞서 들려준다. 마지막 날 연주회에선 베토벤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도 연주한다.
그의 피아노 인생을 열어준 이는 부모님이다. 어머니가 김성복 전 이화여대 피아노과 교수다. 서울대 의대 교수였던 아버지는 바이올린과 플루트가 수준급이었다. 경기고 재학시절 줄리아드 음악원 전액 장학생 자리를 얻으면서 그는 1965년 졸업과 동시에 홀로 유유히 한국을 떠났다.
줄리아드 음악원생 시절, 바이올리니스트 강효 예일대 교수가 룸메이트였다. 그는 강효, 김성길, 정경화, 백건우 등과 함께 줄리아드 한국인 1세대에 속한다. 재학 시절 함께 어울려다닌 백건우에 대해선 "만물박사였다"고 회상했다. 미국 유학 20년째이던 1984년 미시간주립대학 음대 교수로 자리를 잡았고, 그후 2003년 서울대 연구교수로 잠시 귀국한 뒤 2004년부터 4년간 울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도 활동했다. 2007년부터 한양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부인 문용희 미국 피바디 음대 교수와는 틈틈이 듀엣 연주를 선보인다. 아들 이석준은 바이올린, 쌍둥이 딸 이나연은 첼로, 이나경은 클라리넷을 한다."음악을 할 수 있게 지탱시켜주는 힘은 가족"이라며 이교수는 빙긋이 웃는다.
/jins@fnnews.com최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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