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아침] 잡스가 한국 SW산업에 남긴 유언/양형욱 산업부 차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10.21 17:18

수정 2014.11.20 13:21

지난 5일(현지시간)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후 잡스의 추모 열기는 전 세계를 '사과(애플) 천지'로 만들었다.

지난 7일(현지시간)엔 캘리포니아의 팰러앨토시 외곽에서는 가족과 일부 지인이 참석한 가운데 스티브 잡스의 장례식이 진행됐다.

이어 지난 16일(현지시간)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스티브 잡스의 지인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추모식이 열렸다.

또다시 19일(현지시간)에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에서도 비공개로 사내 추모식이 열렸다.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시에 위치한 잡스의 생가 주면엔 연일 사과를 든 추모객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4S는 '잡스의 유작'이라는 대접까지 받으면서 3일 만에 400만대나 팔려나갔다.

이는 잡스는 말 없이 세상과 이별을 했건만 그 파장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단면들이다.

오히려 잡스는 세상을 떠난 후에 더욱 영향력을 높여 '신화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는 분위기다.

전 세계가 잡스를 추앙하는 이유는 뭘까.

단지 잡스가 연간 6억46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미국 최고의 부자였기 때문일까. 아니다.

매출 20억달러에 종업원 4000명의 글로벌 기업인 애플의 CEO였기 때문일까. 아니다.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난 잡스가 스무살에 애플을 창업한 후 매킨토시를 비롯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인류역사를 바꿔놓는 '정보기술(IT) 거장'의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한 만인의 추앙일 것이다.

심지어 잡스가 창업한 애플의 로고인 '한입 베어먹은 모양의 사과'는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화가 폴 세잔의 사과'에 이어 인류의 역사를 바꾼 네 번째 사과로 여겨질 정도다.

특히 잡스가 남긴 창조적 유산들의 핵심 경쟁력은 소프트웨어(SW)로 귀결된다. 잡스는 하드웨어 혁신보다는 놀라운 SW 혁신을 통해 IT 혁명을 주도했던 것.

잡스의 SW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룬 혁신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잡스가 주도한 '아이폰 열풍' 덕에 우리나라에서도 SW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SW 산업의 현실은 총제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기업, 대학 등은 SW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동상이몽'의 행보를 보이는 실정이다.

기업은 국내 SW 인력 채용과 육성에 소극적이고, 해외 SW 인력 채용에 매달리고 있다.

정부는 뒷북 SW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이뿐인가. 대학은 충분한 SW 인력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 입시생들은 SW를 비롯한 이공계를 기피하면서 고수익이 보장되는 전문직종의 학과에만 몰리고 있다.

지난 12일엔 국내 SW 산업의 현실을 엿볼 수 있는 일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벌어졌다.

이날 삼성은 수요 사장단회의를 진행했다. 사장단회의에 앞서 김진형 카이스트 교수를 초청해 '왜 SW인가'라는 강연이 진행됐다.

김 교수는 삼성 사장단을 향해 "SW 학과에 학생들이 오지 않는다. 대기업이 SW 인재 채용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연을 듣고 있던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인력이 총 5만명인데, 그중 2만5000명이 SW 인력이다. 전체의 79%를 SW 인력으로 채우고 싶지만 대학에서 그만한 인력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수했다.

기업과 대학 간 온도차이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기업은 SW 인력을 필요로 하고, 대학은 SW 인력의 취업을 원하는 괴리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SW 산업의 문제는 정부의 미흡한 정책, 기업의 SW 인력 경시 풍토, 대학의 SW 인력 교육 부족 중 어느 한 곳의 잘못으로 돌리기 어려운 총제적인 문제다.

따라서 정부는 건강한 SW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방안으로 불법복제 근절을 비롯한 공인인증서 사용 문제 해결, SW 법인세 혜택, SW 투자세액 공제, SW 수출 진흥 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급한 사람이 우물 파듯, 기업도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SW 투자를 늘려야 한다.


SW 인력의 머릿수만 늘리는 하드웨어식 사고는 지양하고, 잡스와 같은 한 명의 'SW 스타'를 탄생시킨다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대학도 SW분야 인력 육성에 힘쏟아야 한다.


잡스가 생전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항상 갈망하라. 무모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고 역설한 대목은 우리 정부와 기업, 대학이 뼛속 깊이 되새겨야 할 '유언'이 되고 있다.

/hwyang@fnnews.com양형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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