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을 비롯한 의미 있는 시도로 기초과학의 '코리안루트'를 개척하려는 한국 과학은 그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피터 풀데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소장(포스텍 석학교수)는 25일 "한국은 기초과학의 진보를 위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이라는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며 "연구소의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두고 독창적인 연구와 인재 양성을 위한 장기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풀데 소장은 초전도와 자성의 이해 및 상관 전자의 이론 연구에 공헌한 세계적 석학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과학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그는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물리연구소 등 세계적인 연구소 수장을 지내며 노벨상의 산실로 불리는 유럽의 경험들을 체득했다. 지난 2007년 포스텍에 있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연구센터 소장으로 부임한 후 막스플랑크재단, 교육과학기술부, 경북 포항시, 포스텍의 공동투자를 끌어내 주니어리서치그룹(JRC)을 창설했다. JRC는 젊고 역량 있는 과학자들에게 그룹별 리더 역할을 맡겨 연구 몰입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과 유럽의 존경받는 과학자로 어느새 고즈넉한 사찰, 사교적인 사람들, 전통음식과 역사가 어우러진 한국을 좋아하게 된 그가 한국 과학계에 보내는 제언을 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계적인 연구소 수장을 지냈다. 과학자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리더'의 자질은.
▲독창적인 과학적 성과를 토대로 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야 한다. 단순히 논문을 많이 냈다고 해서 독창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과학계에서 인정하는 다방면의 업적과 기여도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경영능력도 필요하다.
―노벨상, 나아가 기초과학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뭘까.
▲독창적인 연구와 인재는 절대 타협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 국제적으로 지명도 있는 과학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역량 있는 젊은 과학자에게 과학적 독립성을 줘야 한다. 한국은 과학벨트 조성사업을 통해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연구소의 역량에 초점을 둔 장기적 지원 노력이 필요한 때다.
―세계적인 과학자를 유치하려면.
▲세계적으로 역량 있는 과학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지속적·독립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근무여건, 연구의 질에 따른 적절한 보상, 과학자 가족을 위한 우수한 국제학교, 국제화된 환경과 편리한 교통수단, 이런 것들에 대한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한국의 기초과학 수준을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다른 분야에 대한 통찰력이 충분치 않으니 물리학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내가 가늠할 수 있는 영역에서 한국 기초과학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예를 들어 재료과학, 고에너지 물리학, 가속기와 같은 대형장비가 그렇다. 하지만 생물물리학, 연성물질 등 크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나 응집물질 물리학 등 일부 분야의 연구활동은 부족한 편이다. 이외 촉매나 태양에너지 활용 등과 같은 분야도 좀 더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다. 아직 발전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
―국가 기초과학 역량 강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아·태 지역 국제공동체의 자문을 충분히 활용하며 서로 협력해야 한다. 기초과학은 기술지향적 산업의 장기적 발전을 견인하는 응용연구의 토대가 된다. 무엇보다 기초과학이 유망한 분야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pado@fnnews.com허현아기자
■피터 풀데 소장은
1936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독일 훔볼트대학교와 미국 메릴랜드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교 교수, 다름슈타트공과대학교 겸직교수, 드레스덴공과대학교 겸직교수로 재직했다. 1971∼74년 프랑스 라우에-랑주뱅 이론연구소 소장, 1974∼93년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물리연구소 소장 등을 지냈다. 14년(1993∼2007년)간 막스플랑크 복잡계 물리연구소 소장을 통해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거듭났다. 2007년부터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소장 및 포스텍 석학교수를 맡고 있다. 2006년 독일 드레스덴 소재 라이프니츠연구소가 수여하는 라이프니츠 메달, 2009년 대만 국가과학위원회가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학술상 '청밍 투 어워드'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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