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칼럼] 전자주민등록증 도입 논의하자/이삼걸 행정안전부 제2차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10.30 17:24

수정 2014.11.20 13:04

교통·통신이 발달된 현대사회에서는 사회·경제활동의 영역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있어 서로의 신분을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만약 신분증 제도가 없다면 내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 있는 다른 수단들을 강구해야 하며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안전한 거래나 신분을 속이는 탈법들이 횡행할 것이다. 또 신분증 위·변조가 너무 쉬워져 신분증을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이 역시 똑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신분증을 위조하면 제3자의 토지를 주인 몰래 팔아버릴 수 있고 집주인 행세를 하며 모집한 전세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갈취할 수 있다.

이런 신분 범죄가 실제 나타나고 있다. 신분증을 위조해 토지 사기, 금융대출, 전세보증금 탈취에서부터 전화·인터넷을 통한 명의 도용의 보이스 피싱까지 온라인·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신분을 위장한 재산 사기 범죄가 적발되고 있다. 일반인도 인터넷을 통해 위조된 신분증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어 조만간 신분 범죄가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위험성마저 감지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9월 전자주민등록증 도입을 위한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주민등록증의 위·변조를 방지하고 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주민등록증이 1999년 발급돼 10년이 지나 위·변조에 취약해졌고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주민등록번호의 오·남용도 심화되고 있어 새로운 신분증을 제작,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주민등록증에 위·변조 방지기능이 내장된 IC칩을 부착해 주민등록증의 위·변조 여부를 확인하고 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정보는 필요 시 본인 동의를 얻어 확인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면 신분증의 위·변조를 사전에 차단하고 개인정보를 더욱 더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또 유출된 주민등록번호의 사용을 점차 줄일 수 있도록 주민등록번호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발행번호를 신설하기로 했다. 발행번호는 생년월일·성별 등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고 본인신청이 있으면 변경이 가능해 우선 주민등록번호와 발행번호를 병행 사용하면서 주민등록번호 사용을 줄인다면 사회적 비용과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주민등록증을 교체해야 할 시점이 됐다. 또 새 주소 시행과 함께 주민등록증의 지번 주소도 새 주소로 바꿔야 한다. 이런 교체 시점에 전자주민등록증을 도입한다면 교체 비용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신분증 위·변조 범죄를 막고 개인정보 보호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전자주민등록증이 도입되면 많은 정보가 한 곳에 집적돼 통합 신분증이 되고 사용 행적이 기록돼 국민의 사생활이 감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주민등록증 수록 사항을 법률로 정해 명확히 제한하고 IC칩의 정보를 중앙데이터베이스에 전송하지 않는다면 통합 신분증도 아니고 사용 행적이 기록되지도 않는다. 또 추가적인 보안 대책을 강구해 개인정보 침해 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함으로써 예기치 못한 해킹·사이버테러 등에도 대비할 것이다. 이런 내용은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법률안에 반영, 법률로 명확히 규정될 것이다.

2008년 8월부터 대한민국 여권에 IC칩을 내장하고 있다. 전 세계 전자여권을 사용하는 국가가 86개국에 이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1개국이 전자신분증을 사용 중이며 6개국이 준비 중이다.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세계 각국은 자국민 보호와 신분도용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IC칩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해외 전자신분증 시장은 2009년 18억달러에서 2014년에는 48억달러 규모로 확대되고 전자신분증을 도입한 독일, 핀란드 등이 자국의 도입 경험과 기술적 우위를 내세워 해외시장을 선점하고 있다고 한다.

전자주민등록증 도입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정보 인권이 강조되고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빅브러더, 디지털 족적의 감시 등 우려는 실현되지도, 실현될 수도 없는 일이다. 반면 정보기술의 발전 속도에 따라 신분증 위·변조 문제나 주민등록번호 유출 문제는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로 전이될 수 있다. 정부정책을 추진하는데 눈앞에 발생하고 있는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해 정보인권 침해 우려를 등한시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정보인권 침해 여부는 면밀히 검토해 추진할 것이다. 전자주민등록증을 발급하기 전에 개인정보 침해 위험을 철저히 점검하고 운영 과정상 투명성과 안전성을 확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신분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전자주민등록증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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