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FC(구 에스콰이아)의 이기철 이사(56·사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대통령의 신발을 만든 장인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하고 박 대통령부터 이 대통령까지 그가 만든 구두를 신었으니 그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주인공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신사동 알쿠노 본점에서 만난 EFC(구 에스콰이아)의 이기철 이사는 "대통령마다 국정 운영 스타일이 다르듯 선호하는 구두 스타일 역시 다 다르다"며 대통령 구두를 만들어 온 40년 인생을 회고했다.
1971년 에스콰이아 견습생으로 구두업계에 투신한 그는 박 대통령의 군인용 단화를 시작으로 대통령 구두 제작을 시작했다. 박 대통령 구두 제작 당시 견습생으로 선배들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 대통령의 신발 제작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그는 박 대통령의 구두 선호도를 또렷이 기억한다.
"발사이즈가 245㎜였던 박 대통령은 '발이 커보이게' '키가 커보이게' 해달라고 주문해 구두 앞부분은 길게, 굽은 높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 산업화에 힘썼던 박 대통령이 국산이 이렇게 좋은데 수입 구두를 신을 필요가 있느냐"며 제작을 외뢰했다고 전했다.
이후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경우 군인 출신답게 직접 대통령의 발을 보지 못한 채 구두를 만들어야 했다. '대통령 발을 직접 잴 수 없는 것이 법'이라는 이야기를 비서실을 통해 전해 들은 그에게 전달된 것은 낡은 대통령의 신발이었다. 군부독재 시절답게 그의 구두는 대통령을 떠받치고 있었지만 구두 제작자와 대통령의 거리는 멀었다.
문민정부에 들어서면서 대통령 구두장인의 위상도 달라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직접 이 이사를 청와대로 불러 발 치수를 쟀다.
"김 대통령은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고 운을 뗀 그는 "발 볼이 넓은 편이었지만 구두 앞부분을 좁고 날렵하게 만드는 스타일을 선호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기간 특히 해외순방이 잦았다. 불편한 다리로 많은 곳을 다녀야 했던 김 대통령은 디자인보다 실용성을 강조했다.
"무조건 가볍고 편안하게 만들라"는 대통령의 주문에 그는 부드러운 가죽과 충격이 흡수되는 가죽창에 라텍스를 신발 바닥에 깔아 편암함을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식 때 신은 구두 역시 이 이사의 작품이다. 이 이사는 구두뿐만 아니라 슬리퍼까지 이병박 대통령의 신발을 여덟 켤레나 직접 제작했다.
대통령 부인 김윤옥·이희호씨의 구두도 제작한 그이지만 그에게도 아직 남은 꿈이 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아직도 수입 명품 구두만 찾는다"며 아쉬움을 전한 그는 구두는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신어야 한다는 인식이 대통령을 넘어 재계 전반으로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longss@fnnews.com성초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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