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민주화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30일 오전 5시31분 6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김 상임고문은 민주화 운동 당시 수차례 수배와 투옥 과정을 거치면서 극심한 고문에 의한 후유증을 앓아온데다 수년째 파킨슨병 치료를 받아오다 지난달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았으나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패혈증으로 한달만에 숨을 거뒀다.
김 상임고문은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와 투옥을 반복했으며, 민주정부 수립 이후에는 재야 출신 정치인 그룹의 좌장으로서 존경을 받았고, 현실 정치권에 진입해 서울 도봉갑에서 15대 국회부터 내리 3선을 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인 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경감 등에게 무려 10차례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는 등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그가 투병한 파킨슨병은 고문 후유증에 따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당시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양심고백을 하고 "아름다운 꼴찌를 기억해달라"며 경선을 중도에서 포기하는 좌절을 경험했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기자
김 상임고문은 민주화 운동 당시 수차례 수배와 투옥 과정을 거치면서 극심한 고문에 의한 후유증을 앓아온데다 수년째 파킨슨병 치료를 받아오다 지난달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았으나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패혈증으로 한달만에 숨을 거뒀다.
김 상임고문은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와 투옥을 반복했으며, 민주정부 수립 이후에는 재야 출신 정치인 그룹의 좌장으로서 존경을 받았고, 현실 정치권에 진입해 서울 도봉갑에서 15대 국회부터 내리 3선을 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인 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경감 등에게 무려 10차례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는 등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그가 투병한 파킨슨병은 고문 후유증에 따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당시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양심고백을 하고 "아름다운 꼴찌를 기억해달라"며 경선을 중도에서 포기하는 좌절을 경험했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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