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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이 필드에서 만난 사람] 이현세 만화가,골프 너무 좋아해 만화 '버디'까지 그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2.12 17:55

수정 2012.02.12 17:55

이현세씨(오른쪽)의 퍼팅을 지켜보고 있는 필자
이현세씨(오른쪽)의 퍼팅을 지켜보고 있는 필자

 골퍼라면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의 라운드를 꿈꾼다.

 나에게도 그런 대상이 있었다. 불세출의 만화가 이현세씨(58)다. '만화'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나 현상의 특징을 과장하여 인생이나 사회를 풍자, 비판하는 그림'이다. 그래서 흔히들 만화가를 일컬어 우리의 상상력을 지배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현세의 만화를 평소에 즐겨 읽던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 그를 필드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해왔다. 그런데 그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이현세씨와 라운드를 하겠느냐'고 제안해왔던 것. 나는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2년여 전인 2010년 4월에 여주 해슬리 나인브릿지에서 그야말로 '만화'와 같은 그와의 라운드를 갖게 됐다.

 첫 대면에서 나도 예외없이 부처님 귀를 닮은 큰 귀와 늘어진 귓불, 그리고 서글서글하면서도 선한 눈 등 그의 외모에 확 사로잡혔다. 18홀을 돌면서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데다 소탈하면서도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자신의 핸디캡이 10정도 된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라운드를 해보니까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처음 골프를 시작한 것은 1996년이라고 했으니까 올해로 구력 12년째가 되는 것이다. 미국 올랜도에 있는 친구와 함께 바다 낚시를 갔다가 날씨가 좋지 않아 골프장으로 발길을 돌린 게 본격적 골프인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

 그 후 그는 골프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들었단다. 골프를 치면 칠수록 골프가 인생과 너무 닮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골프 예찬론자가 된 것은 당연했다. 오죽했으면 "원없이 골프 치다가 죽을 수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말을 했겠는가. 그의 작품 '버디'는 그가 어느 정도 골프를 좋아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방증이다. 현재 모 골프전문채널에서 절찬리에 방영 중인 국내 첫 골프 드라마 '버디 버디'는 그의 이 작품이 원작이다.

 이현세씨가 골프 마니아가 된 데에는 계기가 있었다. 40대 중후반 일명 필화사건으로 법정 공방에 휘말렸을 때 골프를 통해 위안을 얻으면서부터다. 우리의 건국신화를 소재로 동아시아 상고사와 한민족의 생성 과정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호평을 받았던 '천국의 신화' 청소년판이 성행위와 폭력을 묘사한 장면이 있다는 이유로 미성년자보호법에 저촉돼 1998년에 벌금 300만원에 약식 기소됐던 것. 그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고 2003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6년여간 힘든 법정 싸움을 벌였다. 벌금 내고 끝낼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었지만 그는 결코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표현의 자유를 지킬 수 없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만화가 육체의 밥이라면 골프는 정신적 양식이다. 그가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954년에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이현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형제들과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는 지금도 배고픈 울음이 가장 슬프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림에 워낙 자질이 있었지만 적록색맹으로 미대에 진학할 수 없었던 것도 그가 만화를 그리게 된 동기다.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해 지옥의 링, 블루엔젤, 남벌 등 숱한 베스트 셀러를 쏟아내 1세대 고바우, 2세대 이두호와 고우영, 3세대 허영만에 이어 4세대를 대표하는 만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다"고 말한 그가 인생의 후반전에 하고 싶은 것은 동화 작가다. 아울러 이전의 동적인 만화에서 벗어나 정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단다. 한때는 두주불사형의 애주가에다 하루에 2~3갑을 피웠던 애연가였지만 건강을 위해 모두 끊었다. 2년 전 나와 라운드를 마친 뒤 "해슬리 나인브릿지는 까다로운 여자와 같다"고 했던 그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코스마다 특색이 있고 그린이 매력적이지만 어영부영하다가는 100타를 훌쩍 넘기기 십상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다.
한시라도 빨리 건강을 회복해 인생의 마지막 장소가 되길 간절히 소망했던 골프장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길 기원한다. 우리들의 영원한 '마초'의 건강 회복 염원을 담아 '굿~샷'을 길게 외쳐본다.


■김운용은 나인브릿지 대표이사를 지내고 호서대학교에서 명예체육학박사를 받은 뒤 현재 제주 한라대학교 석좌교수와 세계 100대코스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golf@fnnews.com 정대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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