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러시아 환자에 '혈액형 부적합 췌장-신장 동시이식 수술' 성공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5.11 16:21

수정 2012.05.11 16:21

혈액형 부적합 신장-췌장 동시이식을 받은 러시아 환자 타티아나씨(왼쪽 첫번째)가 남편 알렉산드르씨와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혈액형 부적합 신장-췌장 동시이식을 받은 러시아 환자 타티아나씨(왼쪽 첫번째)가 남편 알렉산드르씨와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일반외과 한덕종 교수가 당뇨병 합병증으로 복막투석을 받던 러시아 타티아나(여·37세) 환자에게 혈액형이 다른 아버지 니콜라이(남·60세)씨의 신장과 췌장 일부를 떼어 동시에 이식하는 '혈액형 부적합 췌장-신장 동시이식 수술'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11일 밝혔다.

지금까지 혈액형 부적합 장기이식은 간, 신장을 대상으로만 이루어졌으며 이식 후 발생하는 면역거부반응 때문에 췌장에서는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특히 췌장은 간, 신장 등 다른 장기와는 다르게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소화액이라고 불리며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는 췌장액을 분비한다. 이 때문에 수술 후 소화액이 환자의 인체에 잘 적응하며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세밀하고 정교한 수술기법과 환자 관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췌장 이식 수술의 성공으로 국내 장기이식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은 것은 물론,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환자에게도 당뇨병을 근본적으로 완치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이번 수술은 혈액형이 다른 기증자의 췌장과 신장이 환자에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B형인 타티아나 환자에게 면역억제제를 주입하고, 혈장교환술 등의 처치를 한 뒤 A형인 니콜라이씨의 췌장과 신장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지난 4월 4일 수술을 받은 타티아나 환자는 한 달이 지난 현재 정상적인 식사는 물론 산책이 가능할 정도로 빠른 회복세를 보여 퇴원을 앞두고 있다.

환자의 당뇨 수치도 수술 전에는 정상인보다 약 6배 이상 높은 680mg/dl까지 올라갈 정도로 위급한 상태를 보였으나, 현재 정상 수치인 110mg/dl을 유지해 인슐린을 끊고 당뇨병에서 해방됐다.


타티아나 환자가 새 삶을 얻기까지는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의 노력 외에도 과학자로 일하고 있는 그녀의 남편 알렉산드르씨(남·42세)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환자는 24년 전인 13살 때부터 인슐린 분비가 제대로 안되는 제1형(인슐린 의존형) 당뇨병으로 진단을 받아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고통 속에서 살아왔고, 4년 전부터는 당뇨합병증이 악화돼 만성 신부전으로 투석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남편 알렉산드르씨는 해외에서 치료를 받은 러시아 국민들이 의료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웹 블로그에서 서울아산병원의 세계적인 의료수준을 파악했다. 이후 직접 서울아산병원에 연락을 취해 부인의 수술을 위한 절차를 밟아 나갔다.


이식 수술을 위해 알렉산드르씨는 그녀의 부인 타티아나 환자, 타티아나의 아버지인 니콜라이씨와 함께 지난 3월 5일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알렉산드르씨는 "인터넷에서 서울아산병원의 의료 기술을 접하고 부인의 망가진 신장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었는데, 췌장-신장 동시이식을 통해 당뇨병도 완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놀랐다"며 "의료진에게 감사하고, 관심을 가져준 러시아 국민들에게 부인의 완치된 모습을 하루 빨리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덕종 교수는 "러시아 국민들의 성원과 바람을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의료 기술로 보답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며 "혈액형이 맞지 않는 환자의 췌장이식 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국내 췌장이식 수준은 세계적인 만큼, 장기기증 인식이 활성화 돼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가며 신장투석을 받아야 하는 수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고통에서 해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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