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매 순간의 소중함을?"
생전 세 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미국 작가 손턴 와일더(1897~1975)의 연극 '아워타운' 중 맨 마지막 대사다. 세계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높은 작품. 여기엔 비극적인 줄거리는 없다. 일상의 생활, 그 자체가 주인공이다. 미국 뉴햄프셔주 그로버스 코너스의 작은 마을, 평범한 이들의 삶을 무대로 옮겨오면서 덧없이 흘러가는 인생, 그 배후의 진리를 캐내는 것이 이 연극의 힘이다.
연극계 코드도 '힐링'일까. 비슷한 시기에 두 편의 연극이 이런 테마로 무대에 오른다. 손턴 와일더의 '아워타운'과 윤영선의 '여행'이다.
'아워타운'은 18일부터 내달 14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려진다. '오이디푸스' '레이디 맥베스' 등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들춰내며 묵직한 주제를 다뤄온 실력파 연출가 한태숙이 작품을 맡았다. 그는 자신의 전작을 의식해 이런 말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아껴두기만 하고 못했던 작품을 이제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와 안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이기고 싶어요. 인생이란 걸 따분하지 않게 보여줄 겁니다." 그는 "삶은 결국 죽음을 위한 연습이라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고도 했다.
'아워타운'은 반복되는 일상을 그저 무대 위에 나열하는 방식은 아니다. 무대 위의 연극이 연극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주지시키면서 일상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는 점에선 독창적인 실험극이다. 이 과정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따로 무대에 있다. 전지적 능력의 해설자인 무대감독이다. "M…은, N…과 결혼합니다. 수백만명이 그렇게 하지요. 작은 집, 유모차가 있고 일요일 오후에 포드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고…" 이 무대감독은 사건을 관찰하고 정리하고, 연극의 허구 속으로 직접 들어가 현자의 말을 내뱉기도 한다. "천년 후의 사람들이나 지금 여기 우리들이나 자라서, 결혼하고, 살다가, 죽는 거 그거 다 마찬가지 아닐까요." 무대감독 역은 흡입력이 강한 연기파 배우 서이숙이 맡는다.
1901년 5월 평범한 아침으로 시작되는 평범한 마을의 일상을 보여주는 1막, 1904년 성장과 어른이 되는 과정으로서의 결혼을 다룬 2막, 1913년 죽음을 통해 삶을 재인식하는 3막으로 구성된 원작을 한태숙은 부분적으로 손을 댔다. 1막은 배우들의 공연 연습, 2막은 다소 발전한 연습, 3막은 실제장면으로 이어진다. 박용수, 김세동, 박윤희, 정운선 등이 출연한다.
올해 타계한 지 5주기를 맞은 작가 윤영선의 '여행'은 예술의전당 명품연극시리즈로 오는 21일부터 내달 7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친구들이 하룻밤 동안 죽은 친구의 문상을 다녀오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다룬 내용이다. 실제로 작가가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오면서 쓴 작품이기도 하다. 중년의 나이로 만난 이 사내들의 기억 속에 그들의 추억은 저마다 다른 형태를 띤다. 뭐 굳이 같아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죽음이라는 불편한 진실과 대면해 쏟아내는 하룻밤 이야기다. 2005년 초연됐다. 연출을 맡은 이성열은 "죽음에 대한 문제는 따로 시의성이 있는 게 아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에 고단한 사람들의 느낌을 진솔하게 담고 싶다"고 했다. 장성익, 이해성, 임진순, 박수영 등이 출연한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