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특별기고] 통신요금 인하와 대증요법/설정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상근부회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12.04 17:07

수정 2012.12.04 17:07

[특별기고] 통신요금 인하와 대증요법/설정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상근부회장

코끼리를 밀렵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유엔은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상아 거래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의아하게 들리지만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코끼리 상아 거래를 금지하고 밀렵을 막아왔지만 별로 실효가 없었고 일부 상아 거래를 합법화하면 상아의 가격이 내려가서 밀거래 수요도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이다.

실제 1970년대 아프리카 케냐와 짐바브웨의 사례가 있었다. 케냐는 코끼리의 밀렵을 엄격히 금지했고 짐바브웨는 부락 단위로 코끼리 사냥과 그로 인한 수익을 허용했다.
10여년 뒤 케냐의 코끼리는 감소했지만 짐바브웨의 코끼리 개체 수는 급증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케냐의 강력한 밀렵 방지정책은 주민들의 무관심으로 넓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밀렵을 막는 데 역부족이었다.

반면에 짐바브웨에서는 주민들 스스로 코끼리를 재산으로 여기고 남획이나 밀렵을 막았던 것이다. 단순히 밀렵을 막기 위해 밀렵을 금지하는 것은 실효가 없었다. 근원 치료가 아닌 눈에 보이는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요법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대증요법은 당장 시행하기가 용이하고 단기적인 성과는 기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여러 정책들 중에는 대증요법적인 처방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대증요법은 증상을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근원적인 처방이 될 수는 없다. 상황을 장기화시키거나 악화시킬 수도 있다. 내성이 생겨서 매번 더 강한 처방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가계통신비 경감에 대한 정책들도 이러한 측면이 있다. 그동안 기본요금 인하, 초당 과금제 도입, 문자 메시지 인하 등 여러 요금인하 방안들이 시행됐다. 지난 10년간 물가지수 중에서 유일하게 내려간 항목이 통신 분야일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계통신비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통신요금 인하에 대한 방법이나 요구들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대증요법의 내성만 커지는 셈이다.

단지 통신요금이 높거나 낮다고 가계통신비가 좌우되지 않는다. 가계통신비 상승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상호작용하고 있다.

우선, 통신요금은 내렸지만 사용량은 늘었다. 지난해 1인당 연평균 무선 데이터 이용량은 1만20MB로 세계 평균의 9.1배에 달했다. 이는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보다도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가격이 비싼 스마트폰 구입도 늘어났다. 스마트폰 사용자는 2010년에 152만명이던 것이 지난 8월에는 3000만명을 넘어섰다. 스마트폰 가격은 80만~100만원대로 이전의 30만~40만원대 휴대폰에 비하면 2배 이상 비싸다. 또한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기능이 제공되면서 콘텐츠 구매나 소액결제가 늘어나 가계통신비 증가에 일조했다. 이렇다보니 통신요금을 낮추는 것만으로 가계 통신비가 내려가기 어렵다.

문제는 통신요금을 낮추는 대증요법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통신사들의 올해 3·4분기까지 영업이익은 2조53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3%나 급감했다.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선 통신사도 있을 정도다. 반면에 이용량 급증에 따라 통신망 확충에 들어간 투자액은 올해 3·4분기까지 5조6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2%나 증가했다. 이 같은 통신사업자들의 경영악화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통신 산업은 통신 단말이나 장비,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에 이르는 산업연관효과가 크고 무엇보다 ICT 산업의 인프라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향후 5년 또는 그 이상의 영향력을 미칠 중요한 대선을 앞두고 있다. 당장은 단기적인 대증요법적인 공약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후보자도 유권자도 당장의 요금인하보다는 차세대 통신망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는 등의 실효성 있고 장기적인 측면을 고려한 공약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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