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과정에서의 실패를 단순한 실패로 보면 안된다. 제2의 비아그라가 개발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새로운 신약개발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신약재창출(드러그 리포지셔닝·Drug Repositioning) 전략이 일반적인 신약개발보다 상대적으로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신약재창출로 개발한 신약이 임상시험 3상에 돌입하면 상품화 가능성이 90%를 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일반 신약의 경우엔 이보다 낮은 70% 수준이다.
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개발된 신약 51개 중 신약재창출로 개발된 신약은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내 제약사들도 기존 제네릭(복제약)의 단순 판매 차원에서 벗어나 신약재창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혈압약 비아그라 발기부전 치료제로 대박
신약재창출은 개발에 실패했거나 시장성 부족 등으로 개발이 중단됐지만 충분한 안전성과 선행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약물을 새로운 적응증을 타깃으로 삼아 다시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영국 의학연구위원회는 신약재창출 사업을 추진해 개발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신약재창출은 우리나라와 같이 신약개발의 기초 인프라가 부족한 한계를 가진 연구자들에게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과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새로운 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혁신 신약이 개발되기 위해서는 10~15년이 걸리고 개발 비용도 실패비용까지 감안하면 19억달러(약 2조575억원)가 소요된다. 하지만 신약재창출로 신약개발에 나서면 후보물질 발굴 등의 시간을 줄여 상품화를 최소 5년 앞당길 수 있다. 또 실패에 따른 비용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대표적인 신약재창출 신약이다. 비아그라는 고혈압 및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었다.
하지만 임상에서 약효가 부족한 것으로 판명된 후 실험을 다시 하는 과정에서 발기부전증 치료 약효가 발견돼 현재 연간 16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의 대표적인 신약재창출 상품으로 꼽히고 있다.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로 개발돼 지금은 탈모치료제로 사용되는 '아보다트'(글락소 스미스클라인 개발)도 신약재창출 의약품이다. 일부 신약재창출 의약품은 난치성 희귀질환 치료제로 용도가 전환되기도 했다. 세엘진의 탈리도마이드는 당초 진정 최면제로 개발됐지만 지금은 다발성골수종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실패서 성공 찾는 시각 필요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이하 KDDF) 주관으로 최근 서울 중림동 L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신약재창출 심포지엄'에서 전문가들은 신약재창출로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에 입을 모았다.
한국MSD 김규찬 박사는 "기술개발이 되지 못해 간과했던 물질에 대한 개발이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면서 "개발된 신약의 적응증을 확대하거나 타 질환으로 전환하는 것도 신약재창출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컬럼비아대학교 김태완 교수는 "신약개발 과정에서의 실패를 단순한 실패로 보지 말아야 한다"면서 "넓은 시각에서 후보 물질을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약 개발 시 한 가지 타깃에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넓은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견됐지만 타 적응증에선 치료 효과를 확인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신약 개발 과정에서 임상시험 중에 실패한 물질의 성공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시각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화학연구원 신약기반기술연구센터 최상운 센터장은 "신약재창출 개념을 도입해 시스템화해 기업의 신약개발 효율성을 제고하고 리스크를 감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sk@fnnews.com 홍석근 기자
■신약재창출은 개발에 실패했거나 시장성 부족 등으로 개발이 중단됐지만 충분한 안전성과 선행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약물을 새로운 적응증을 타깃으로 삼아 다시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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