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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박정희, 이정희, 분노의 역류/이재훈 논설위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12.24 17:28

수정 2012.12.24 17:28

[이재훈 칼럼] 박정희, 이정희, 분노의 역류/이재훈 논설위원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근 1주일이 됐지만 여전히 '5060세대의 역습'이 장안의 화제다. 특히 50대가 보여준 90%의 경이로운 투표율을 놓고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50대는 89.9%가 투표를 했고 이 중 62.5%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거동을 할 수 없는 환자나 출장 중인 사람 등을 제외하면 50대는 거의 전원이 투표장으로 달려간 셈이다. 50대의 대결집이 대선 판도를 갈랐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박근혜의 승리'는 '50대의 승리'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셋 중 두 명꼴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2030세대들에게는 50대의 '총궐기'가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민주화·산업화의 주역이자 수혜자인 50대가 이젠 기득권을 지키는 쪽으로 변절했다" "살기 힘들다면서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보수로 돌아서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사실 현재의 50대를 '골수 보수'로 규정할 수는 없다. 10년 전 대선에서 40대였던 이들은 노무현 후보 48.1%, 이회창 후보 47.9%를 지지해 진보 쪽에 더 많은 표를 줬다. 당시에도 이회창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50대 이상, 지금의 60대 이상과는 분명 다르다. 게다가 이들은 유신과 군부독재 속에 청년기를 지냈고 1987년 6월 항쟁을 비롯한 민주화 과정에서는 '넥타이 부대'로 앞장섰으며 경제개발과 산업화를 주도한 세력이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는 중장년의 가장으로서 줄줄이 거리로 내몰렸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그들이 왜 스스로 결집했으며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언론 매체에는 여러 가지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주말 참석자 전원이 50대인 동창 모임에서 장시간 얘기를 나눴다. 공통된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박정희와 이정희, 즉 두 '정희'가 박근혜를 살렸다." "세상이 거꾸로 간다는 불안과 분노 때문에 표를 던졌다."

50대 이상 세대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독재와 경제성장의 두 얼굴이 오버랩되는 애증의 대상이다. 그런 박정희 시대, 즉 과거를 통째로 부정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과거와 경제적 성과 자체를 부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야권은 2030세대를 집중 공략하면서 이런 인상을 줬다. 실제 젊은 층이 장악한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 심했다.

그 극단을 보여준 것이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다. 그는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당신을 떨어뜨리러 나왔다"며 온갖 독설과 궤변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과격한 진보의 진짜 모습을 보면서 이러다간 세상이 뒤집히겠다는 걱정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선거 직후 유권자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보수 표심 집결의 원인으로 가장 많은 31%가 '이정희 후보의 TV토론 태도'를 꼽았다. 이정희 후보의 비뚤어진 이미지는 고스란히 문재인 후보에게 전이됐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과거 정책연대를 했던 이들이 과연 경제를 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 안보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이 50대의 분노로 파급됐다는 분석이다.

선거에서 나타난 50대 이상 노년층의 표심은 정치권에 두 가지 새로운 과제를 던져 줬다. 첫째는 이제 노년층을 무시하고는 누구도 집권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고령화와 출산 감소로 인해 50대 이상 유권자 비율은 이번에 40%에서 2017년 대선 때는 44.4%, 2022년 대선 때는 49.7%로 급격히 늘어난다. 노년층 맞춤 정책을 제시하고 마음을 사야만 하는 이유다.
둘째는 세대갈등을 치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포털사이트에는 진보 성향의 일부 젊은층이 "노인 무임승차를 폐지해야 한다" "기초노령 연금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을 속속 올리는 등 갈등이 가시화하고 있다.
편 가르기를 부추긴 정치권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ljhoo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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