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주어진 소임을 내려놓고 여러분께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 그 자체로, 저로서는 큰 영광과 보람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41대 국무총리 김황식)
2011년 연평도 전사자 1주기 추모식장. 장대비가 오는데도 유독 한 사람만이 우산을 쓰지 않았다.
경호팀장이 우산을 씌워주자 "괜찮다. 치우라"고 말하곤 40분간 고스란히 그 비를 다 맞았다.
옷이 흥건히 젖은 그는 전사자들의 묘역을 찾아 헌화하고 비석을 어루만졌다. 빗물이 얼굴을 타고 내렸고 눈은 충혈돼 있었다. 그날 사람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려는 그에게서 고위 공직자로서의 진정성을 느꼈다고 말한다.인물 기근의 시대, 이같이 뭉클한 일화들을 남기고 명재상이 떠나갔다.
26일 김황식 총리(65)가 41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총리 재임기간은 2년5개월. 정일권(6년7개월), 김종필(6년1개월), 최규하(3년10개월) 전 총리에 이어 네 번째 장수 총리이자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다.
그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그저 성실하고 괜찮았던 사람으로 기억해 주신다면 감사하겠다"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떠나는 그에게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총리였던 그는 떠나는 날까지 공직사회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임사에서 그는 "구제역 발생으로 전국 곳곳에서 공무원들이 과로로 쓰러지고 순직할 때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괴로웠다"면서 화재 도중 순직한 소방관 등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유가족들이 아버지 없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하고,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고 고백했다. "더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만들어 드리지 못한 게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서울중앙지방법원을 찾아 후배 법관들에게 공직자로서 원칙과 자세도 강조했다. "전관예우, 무전유죄…국민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 중 많은 부분은 여러분이 책임져야 한다"면서 "원칙에 맞게 일한다고 해도 국민을 납득시키는 노력도 우리의 과제이며, 국민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외계층, 서민층과의 스킨십에도 적극적이었다.
꾸준한 현장방문과 이를 정책으로 연결 지으려는 노력은 크고 작은 결실을 맺기도 했다. 재임 기간 김 총리는 29회의 간담회와 190회의 현장방문을 진행했으며 정책으로 연결시키려 노력했다.
또 현장 방문 기록을 자필 메모로 기록한 '연필로 쓴 페이스북' 연재는 튀지 않으면서도 국민과 소통을 멈추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때때로 거침없이 소신도 드러냈다.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고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제주 해군기지 이전, 택시법 등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를 조정하고 불법 사금융 척결, 묻지마 범죄와 성폭력 대책,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마련을 주도하기도 했다.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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