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치하 저항시인 윤동주의 시(詩)인가 싶을 정도로 화사한 분위기의 봄 노래가 있다.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그러나 빼앗긴 들에 자연의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도 생동의 봄, 자유와 평화의 봄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봄에 일제치하 빼앗긴 봄을 떠올리게 하는 일들이 이어지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 달 아소 부총리 등 각료들에 이어 일본 여야 국회의원 168명이 군국주의 침략의 정당성 옹호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야스쿠니 신사에 집단 참배했다. 아베 총리는 작심한 듯 '침략'은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망국은 일본의 사죄를 따지기 전에 우리의 절대적 부끄러움이다. 역사의 뼈아픈 교훈은 나라가 있어야 비로소 자유가 가능하고 나라가 없으면 바로 노예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망국의 고통, 피해, 수모감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일제 36년이 이를 웅변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물과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나라 있음의 고마움을 평소에는 잘 못 느낀다. 나라 잃은 백성의 비참한 현실과 암울한 미래, 처참하고 치욕적인 시대상황, 지식인의 비애와 부끄러움은 윤동주 시인이 살고 죽은 길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순수하고 치열한 삶을 살고자 했던 청년은 교토 유학시절 참담한 현실 앞에 무력한 자신을 빗대어 "인생은 살기 어렵고 오히려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조선독립의 실현을 위한 회합을 몇 차례 가졌다가 체포됐는데 당시 조선독립 투쟁은 일본에는 국체 변혁의 시도였고 윤동주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복역 중이던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디찬 감방에서 그토록 갈망했던 독립과 자유를 목전에 두고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옥사했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옥살이에 건강한 젊은이가 왜 죽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교토지방법원 형사판결에 나타난 윤동주의 죄는 "조선인의 실력, 민족성을 향상해 독립운동의 소지(素地)를 배양하도록 일반대중의 문화 앙양 및 민족의식 유발에 전념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조국애(祖國愛), 독립에 대한 열망 그리고 조선 민족의식 고취(鼓吹)의 염원(念願)이 죄이고 그 생각을 담은 시가 무기로서 바로 유죄의 증거라는 것이다.
형무소에서 자신의 분신인 육필 원고 뭉치가 소각되면서 그는 이제 아무도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무시무시한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솔가지에 쏟아져 바람인 양 솨-소리가 날 듯한" 달빛 아래 깊은 사념에 잠기기 일쑤였던 청년 윤동주는 홀로 감방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벗삼아 어머니와 동무를 그리워하며 가을이슬 같은 눈물을 흘렸으리라.
일본의 역사인식 후퇴가 우려되는 요즈음 '달을 쏘는 윤동주'가 우리 곁에 다시 다가온다. 이달 초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가 노래와 춤으로 엮어져 전통가무극 형식으로 무대에 올려진다. 식민지 시대 지식인 윤동주의 고민과 갈등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하겠다. 극의 중심에는 달이 있다.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서 무사의 마음으로 달을 쏜다. 통쾌하다 부서지는 저 달빛." 고교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윤동주를 잠깐 만난 이후 작년 여름 이 가무극의 초연(初演)을 보기 전까지는 윤동주를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동안 수난시대 고민하는 젊은 지식인의 아픔에 별 관심이 없었던 점이 부끄럽다. 영혼의 순수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이 천박하고 잔인한 시대에 청순한 윤동주의 영혼을 접하면서 잠시나마 마음의 정화와 치유의 시간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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