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을 하면 할수록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남과는 다른, 차별화된 연주를 하는 게 제 목표예요."
세계 클래식 기타 분야에 혜성같이 등장한 이건화씨(30·사진). 그는 독일 '2010 오베르하우젠 국제 기타 콩쿠르' 2등을 시작으로 '2011 노르트호른 국제 기타 콩쿠르' 3등, '2012 게벨스베르크 국제 기타 콩쿠르' 3등, '2012 코블렌츠 국제 기타 콩쿠르' 피날리스트, '2013 게벨스베르크 국제 기타 콩쿠르' 2등에 올랐다. 세계 콩쿠르에서 매년 1개 이상의 상을 받은 것이다. 최근에는 독일에서 독주회를 열어 관객은 물론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건화씨의 이력은 독특하다. 컴퓨터공학도에서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변신한 것. 세종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2학년을 마친 1997년 갑자기 클래식 기타를 공부하겠다며 독일로 떠났다.
공학도로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기 원했던 부모님은 극력 반대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다"고 진로 변경의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취미생활로 기타를 연주했는데요. 공학보다 기타에 관심이 자꾸 가더라고요. 클래식 기타가 내 길이다 싶었어요. 물론 고민이 된 건 사실입니다. 국내에도 '기타학과'는 있었어요. 하지만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건화씨는 부친인 대우조선해양 이철상 부사장이 노르웨이에 근무할 당시인 1983년에 태어났다. 그가 클래식 기타에 빠진 것도 클래식을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럽 문화 덕인지 모른다. 그러나 기타를 접한 건 대학에 들어간 뒤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어느 날 집을 방문한 사촌 형이 "넌 피아노도 잘 치니 기타나 한 번 배워볼래"라며 기타를 쥐어준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기타가 그의 '현재'가 됐고 '미래'가 됐다.
다소 무모해 보였던 그의 유학은 성공적이었다. 기타 연주 경력이 대학 1학년과 공익근무기간을 포함해 3년 정도에 불과한데도 그의 기타 실력은 현지에서 바로 인정해 줬다. 우려됐던 독일어도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덕인지 쉽게 익혔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영어를 해서 그런가 봐요. 독일어는 쉽더라고요.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땐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었지만 한 학기 정도 지난 뒤부터는 별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는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을 최고 점수로 졸업하는 영예를 안았고 뒤셀도르프 대학원도 최고 점수로 졸업했다. 지금은 세계 정상급인 알렉산더 라미레즈 교수 밑에서 박사(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다. 클래식 기타 박사 과정은 독일에만 있는 것으로 마치면 '프로 연주자'로 인정받는다.
라미레즈 교수는 "건화는 젊은 연주가 지망생들의 기대주"라면서 "그의 음색, 명상적인 연주 자세와 노래를 하듯 기타를 치는 모습에 관중은 매료된다"고 극찬했다.
현지 평론가들은 최근 독일에서 열린 건화씨의 독주회를 감상한 뒤 "연주할 때 보여준 음색의 다양성, 훌륭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맑은 음색, 연주할 때 악기와 함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은 30세의 어린 나이지만 '대가'라는 명칭을 붙이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에 대한 건화씨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테크닉이 훌륭하다는 평가도 감사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연주자와는 달랐다는 평가가 가장 듣기 좋다"고 했다. "연주할 땐 '작곡가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였을까' '어떤 상황에서 작곡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런 생각들을 제 생각과 결합해서 마치 제 작품처럼 연주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루 연습 시간은 6시간가량. 라미레즈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는 시간 외에는 연습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진 않다고 한다. "발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고 또 나아진다고 해도 다른 연주자와 비교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히 큽니다. 이를 극복할 방법은 연습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건화씨가 바라는 미래 모습은 교수이자 프로 연주자다. "최근 클래식 시장이 좁아지고 있어 안타까워요. 세계 곳곳을 돌며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훌륭한 스승들께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도 물려주고 싶고요. 한국에서도 저만의 개성 있는 공연과 프로젝트를 꼭 해보고 싶습니다. 저를 통해 많은 사람이 클래식 기타에 관심을 기울이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연주자들이 나왔으면 합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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