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삶의 질 레벨 업! 서머타임이 답이다] 블랙아웃 우려 커지는 한국

김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5.26 17:23

수정 2013.05.26 17:23

[삶의 질 레벨 업! 서머타임이 답이다] 블랙아웃 우려 커지는 한국

#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거주하는 49세의 직장인 피터 손씨. 손 씨는 최근 오후에 골프연습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서머타임이 시행되면서 오후 시간에 여유가 생겨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올해는 골프를 본격적으로 배우기로 한 것. 1시간 일찍 일어나는 것이 매년 시행 초기에는 피곤하기는 하지만 1∼2주 가량이 지나면 몸이 적응해 현재는 시행전과 큰 차이가 없다고. 손 씨는 "매년 시행되는 거여서 크게 피로도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 한국 1987~1988년 여름. 술집에 비상이 걸렸다. 매상이 예년에 비해 30∼50% 가량 급감한 것. 서머타임이 실시되면서 직장인들이 오후 7시가 넘어도 날이 밝아 술 마시기가 쑥스럽다며 집으로 향한 직격탄을 맞은 것. 특히 카바레나 나이트클럽 등은 밤 10시가 돼도 빈좌석이 즐비했다. 반면 평일에도 가족과 함께 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서 헬스클럽, 볼링장, 실내골프장, 실내수영장, 테니스장, 극장 등 취미.교양.레저산업 매상은 예년보다 10~20% 늘었다. 학원가는 매년 5~6월이면 불황기인데 수강생이 늘어 오후 시간 영어회화 강좌를 신설하기도 했다.

현재 서머타임을 시행하고 있는 미국 현지의 반응과 국내에서 시행했던 지난 1987∼1988년의 모습이다. 서머타임은 해가 길어지는 시기에 시간을 1시간가량 앞당기는 제도다.
시간이 1시간 당겨지지만 삶에 미치는 파괴력은 크다. 국내에서 서머타임을 시행하는 데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서머타임을 세 차례 시행했다 폐지했고 이명박정부 때도 도입을 검토하다 결국 무산된 바 있다. 현재 서머타임을 시행하는 국가는 86개국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 아이슬란드만 도입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는 백야 때문에 서머타임이 필요하지 않고 일본은 지방자치단체인 도쿠시마현이 자체적으로 시간을 당기는 등 일부에서 도입하고 있다. 많은 나라가 시행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분명히 장점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이 에너지 절감, 국가.사회 시스템 선진화,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대부분의 OECD 국가가 시행하는 서머타임을 우리도 도입하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서머타임을 위해 정부.기업.노동계가 어떤 해법을 찾아내면 좋을지를 알아본다.

새 정부는 일자리 중심 창조경제, 맞춤형 고용.복지,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안전과 통합의 사회, 행복한 통일시대 기반 구축 등 5대 국정목표를 제시했다. 이 같은 5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창의력을 높여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사회 시스템을 선진화하기 위해 산적한 과제를 하나하나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1990년대부터 격주휴무제, 분산휴가제 등으로 국가.사회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인프라 개선에 앞장선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창조경제로 일자리 창출, 복지.사회 시스템 개선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그동안 주5일제, 분산휴가제로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를 선진화했는데 이제 서머타임, 조기출퇴근제로 한 단계 더 레벨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조경제 위해 사회시스템 개선 필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수십년간 서머타임으로 사회시스템을 변화시켜 교통사고.에너지 사용.야간범죄 감소, 자기개발 기회.가족 중심 생활문화 확산 등의 효과를 얻고 있다. 서머타임 도입을 통해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박근혜정부가 추구하는 안전과 통합의 사회, 창조경제,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에 한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서머타임 제도가 에너지절약 효과 등의 목적이 컸지만 현재는 에너지절감 효과는 물론 삶의 질을 향상하려는 목적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너지경제연구원 등 조사에 따르면 서머타임을 시행하면 전력 사용량 감소, 교통사고 감소, 야간범죄 감소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우선 서머타임이 시행되는 4∼9월에는 일광 활용시간이 늘고, 전력절감 인식이 확산되는 등의 효과로 전력 사용량이 0.42~0.98% 절약될 것으로 추산된다. 금액으로는 연간 500억~1180억원을 줄일 것으로 예상되는 것. 절감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올해도 전력부족에 따른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우려되는 것을 고려할 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출퇴근시간 분산과 교통사고 감소로 연간 807억~919억원의 경제적인 편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국내 교통사고 사망률은 하루 중 오후 6~12시가 37.2%로 가장 높은데 교통량을 분산시켜 사고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1987년 서머타임 시행 당시 출근시간대(오전 6~10시)와 퇴근시간대(오후 4~8시) 교통사고 발생률이 0.3~0.5%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귀가.하교 시 일광시간이 길어져 야간범죄도 줄어 전체 범죄율이 2.53%가량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총범죄 178만건 중 퇴근시간대가 포함된 오후 8~12시가 39만건(21%)으로 오전 0~4시 65만건(36%)에 이어 하루 중 범죄 발생률이 두 번째로 높은 시간대다. 서머타임이 도입되면 여성, 청소년이 어두워지기 전에 귀가할 수 있어 상해(2.79%),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범죄(2.85%), 폭행(2.94%) 사건 등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조사됐다.

[삶의 질 레벨 업! 서머타임이 답이다] 블랙아웃 우려 커지는 한국


■삶의 질 레벨업 기대, 노동시스템은 개선 필요

레저, 관광, 외식업, 유통업, 학원 등 서비스업 활성화와 향락성 소비 등의 감소 효과로 국민의 삶의 질도 레벨업될 것으로 기대된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서머타임을 실시한 1987년은 1986년보다 주류 소비 증가율이 3.1%에서 2.3%로 감소했고, 유흥서비스업 매출이 30% 내외 줄어들었다.

직장인의 자기 개발과 평생교육을 위해 서머타임 등 조기퇴근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크다.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소셜네트워크 및 소셜컴퓨팅 야간강의를 하고 있는 씨온 안병익 대표는 "수강생 대부분이 직장인인데 퇴근 후 참가하다보니 30여분씩 지각하며 겨우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서머타임을 도입하고 퇴근이 일러지면 수업 참여도 높아져 평생교육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계 등이 근무시간 연장, 생활리듬 혼란 등 부정적 효과를 내세운 반대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에서는 1997년, 2009년 등에 서머타임을 도입하려 했지만 노동시스템 문제로 번번이 좌절됐다. 노동계는 퇴근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국내 상황에서 서머타임을 도입하면 근로시간만 늘어날 것이라고 반대했다.

한국은 2010년 기준 취업자 1인당 노동시간이 219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많은 노동을 하는 국가다.
긴 근로시간 등 피로감으로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8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렇게 어려운 근로환경에서 서머타임마저 도입되면 근로시간만 연장된다는 논리다.


최종찬 전 장관은 "서머타임을 위해서는 정시퇴근 등 경영계의 협조가 필요하다"면서 "대부분의 선진국이 서머타임을 실시하는 것을 참고하고, 우리 조직문화도 수평적으로 변하는 등 이제 도입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기석 팀장 김문호 박인옥 차장 임광복 안승현 이정은 김호연 이유범 이승환 조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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