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리출판사 윤구병 대표
“하루 6시간 근무, 4시 칼퇴근하니…자기계발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 늘어,출판업계 불황에도 매출 선방했죠”
보리출판사는 전 직원이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하루 6시간 근무 실험'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실험은 우리나라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길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다수의 직원들은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 직무와 관련된 외국어.전자책.편집 등 학원이나 야간 대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야구.수영을 즐기고, 아이와 축구교실 등에 나가기도 한다.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학원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치기도 한다. 출판업계가 불황인 것을 감안하면 매출도 선방했고, 직원 월급도 소폭 올랐다.
#. 카카오 이석우 공동대표
“신입사원부터 의장까지 영어 이름,직원들이 나를 "어이, 비노"라고 불러..수평적 문화 덕분에 혁신 가능하죠”
사용자 9000만명을 넘어선 카카오톡을 서비스하는 카카오는 김범수 의장(브라이언)부터 신입사원까지 영어 이름을 만들어 편하게 부르고 있다. 카카오 공동대표인 이석우 대표는 비노, 이제범 대표는 JB다. 이석우 대표는 "직원들이 나를 '어이 비노'라고 부르는데, 이런 수평적 조직문화 덕분에 상하 권위의식을 깨고 팀 단위 조직을 만들고 해체하며 사용자의 요구에 맞는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팀을 새로 만들면서 팀장은 팀원이 되고, 팀원이 팀장이 돼도 서로가 어색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등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 창조경제 시대를 맞아 정시퇴근제가 확산되고 있다,
수평적 조직문화가 도입돼 '윗사람 눈치보기'가 줄면서 근로여건도 개선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머타임을 도입할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OECD 34개국 중 사실상 한국만 서머타임을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노동 강도만 세질 수 있다는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면서 근면.성실이 근로자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아왔다. 우리의 근로문화는 수출 납기에 맞추기 위해 제품을 '빨리빨리' 생산하기 위해 야근이 잦았고, '윗사람 눈치보기'가 심해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일거리가 없어도 자리를 지키는 것이 다반사였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성인 연구위원은 "2009년에도 서머타임을 도입하려 했지만 생활리듬 혼란, 노동시간 연장 등 불만이 높아 제도적 보완으로 막겠다고 설득하려 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식기반 창조경제 시대로 접어들면서 정부, 금융, 기업들이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고 창의성을 높이는 근무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정시퇴근제 등으로 노동시간이 줄자 업무효율성이 높아져 매출이 오르고, 자유로운 토론 등 수평적 기업문화가 확산되면서 '카카오톡' 같은 창의적 서비스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이 갖춰지고 있다.
■정부.금융.기업 정시퇴근제 확대
정부는 공무원의 주2회 정시퇴근제를 도입하는 등 근로문화 개선에 나섰고, 기업도 직원의 창의성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동참하고 있다.
정부는 2009년부터 매주 수요일을 '가족 사랑의 날'로 지정해 43개 중앙부처, 16개 시.도 정시퇴근제를 도입했다. 올 들어 과천시, 영월군, 제천시 등 지자체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한발 더 나아가 공무원들의 정시퇴근제를 주 2회로 늘리겠다고 각 부처와 지자체에 알렸다. 여가부 가족정책과 김지연 주무관은 "가족 사랑의 날 정시퇴근을 매주 2회로 늘리자고 연초에 대통령 업무보고를 하고, 지난달 중앙정부 등에 공문을 보냈다"면서 "시.군.구 지자체, 정부소속 기관 100% 확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기업 유관단체의 모임에도 적극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여가부는 탄력근무제.근로자지원제를 강화해 일과 가정생활 병행, 자기계발을 지원하는 가족친화인증기업 253곳(지난해 말 기준)을 선정했다. 이와 관련, 금융위원회 등 6개 중앙부처는 가족친화인증기업에 기업은행 신용평가 시 우대 등 13개 지원사업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 등 9개 지자체는 지방세 세무조사 유예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수평적 조직문화로 창의적 서비스 내놔
기업.국민.우리.하나.스탠다드차타드 등 금융권과 대상.코웨이.한국야쿠르트 등 기업들도 업무 몰입도와 자기계발.가정생활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정시퇴근제 도입 바람이 불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36개 지부 시중은행, 지방은행, 국책 공기업, 유관기관이 사용자단체와 올해 말까지 정시퇴근제인 'PC오프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해 지부별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금융산업노조 성낙조 대변인은 "수년 동안 노동계가 요구했던 것인데 시대적 흐름이 바뀌니 회사 측도 긍정적으로 접근하고 있어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며 "관행적으로 연체독촉 등은 업무시간 이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윗사람 요구로 야근을 하기도 했는데 이런 부분도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시퇴근 등 업무효율성을 높이면서 매출이 향상되기도 한다. 대상은 근면성이 아니라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기치 아래 2009년 3월부터 정시퇴근제, 장기 리프레시제 등으로 오후 5시 30분이면 업무를 마무리했고 업무량이 많아도 저녁 7시 전에는 무조건 퇴근했다. 신규 인력 충원 등으로 업무량을 줄이고 직원 만족도를 높이자 매출도 올랐다.
2008년 매출 9200억원으로 떨어졌지만 정시퇴근제를 도입한 2009년 1조90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1조5500억원으로 성장세다.웅진코웨이, 한국야쿠르트 등은 임직원들이 정시퇴근을 독려하는 등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독일 등 선진국들은 우리와 조직문화가 달라 상사 눈치를 안 보고 타자를 치다가도 칼같이 퇴근한다"면서 "우리도 노동계가 요구하는 정시퇴근제가 확산되고 있어 이제 서머타임을 시행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기석 팀장 김문호 박인옥 차장 임광복 안승현 이정은 김호연 이유범 이승환 조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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