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6.28 03:04

수정 2013.06.28 03:04

[곽인찬 칼럼]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보라. 둘레가 톱니바퀴처럼 까끌까끌하다. 어느 나라 동전이나 공통이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옛날엔 금화·은화를 많이 썼다. 금화·은화는 그 자체로 귀금속이다. 약빠른 이들은 금 부스러기를 얻기 위해 금화 주변을 살살 깎았다.
이를 클리핑(Clipping)이라 한다. 둘레를 톱니 모양으로 만들면 클리핑을 쉽게 적발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금화를 가죽부대에 넣고 비벼서 금가루를 얻었다. 스웨팅(Sweating) 수법이다. 클리핑이나 스웨팅처럼 돈의 물리적 가치를 낮추는 조작을 디베이스먼트(Debasement)라 한다. 디베이스먼트의 역사는 인류의 화폐 역사만큼이나 길다.

클리핑·스웨팅이 생계형이라면 함량 조작은 기업형이다. 그 원조는 로마 황제들이다. '골수 한은맨' 차현진씨가 쓴 '금융오디세이'에 따르면 은화 데나리우스는 원래 4g정도였다고 한다. 이게 네로 황제 시대에 3.8g으로 줄었고 제정 말기에는 은의 함량이 2%까지 하락했다. 나머지 98%는 불순물이란 얘기다. 금·은 함량을 보면 당시 그 나라 경제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다.

16세기 영국왕 헨리8세는 디베이스먼트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는 유산을 다 까먹고 함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자신의 낭비벽을 충족시켰다. 헨리8세의 재정 고문이 '그레셤의 법칙'으로 유명한 토머스 그레셤이다. 그는 헨리8세가 죽자 후계자인 엘리자베스1세를 찾아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며 악화 제거를 요청했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기틀을 놓은 여왕도 시장에서 악화를 쫓아내지 못했다.

그 임무는 한 세기 뒤 명예혁명을 완수한 오렌지공 윌리엄3세에게 넘어갔다. 1690년 영국 정부는 은화 40개를 고의로 작게 깎았다는 혐의로 부녀를 체포해 처형했다. 본때를 보이기 위해 아버지는 교수형에 처한 뒤 시체를 토막냈고, 딸은 산 채로 불구덩이에 던졌다. 이어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설립(1694년)됐고 2년 뒤 왕실조폐청에서 새 주화를 발행했다. 그제서야 영국은 악화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유럽에서 지폐를 발행한 첫 국가는 스웨덴이다. 구리가 풍부한 스웨덴은 금·은화 대신 동전(銅錢)을 찍었는데 부피가 크고 무거웠다. 상거래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스웨덴 정부는 발권력을 가진 릭스방크(1668년)를 세웠다. 이 은행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중앙은행이다.

사실 지폐 곧 종이돈은 혁명적인 발상이다. 그 자체론 휴지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이돈을 찍을 때는 원하면 금으로 바꿔준다는 금 태환(兌換) 약속이 꼭 따랐다. 그래도 18세기 미국에선 지폐에 대한 불신이 대단했다.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종이는 돈이 아니라 돈의 유령일 뿐"이라며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 설립에 극력 반대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Fed)가 독립선언 후 약 140년이 흐른 1913년에야 설립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전후 미국은 금 1온스당 35달러에 달러가치를 고정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1971년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한 닉슨 쇼크로 무너졌다. 지금 금값은 온스당 1200달러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만큼 달러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윤전기를 돌려 달러를 찍어내는 비전통적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이를 흉내냈다. 엄격한 기준에서 보면 양적완화는 현대판 디베이스먼트다. 예전엔 군주들이 금·은 함량을 조작했지만 지금은 중앙은행이 지폐를 대량생산한다. 금으로 바꿔준다는 보장도 없다. 함량조작이든 양적완화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결과를 낳는다. 덜컥 겁이 났을까, 버냉키 의장은 뿌린 돈을 거둬들이겠다고 말했다.
불행히도 악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파편이 우리한테 튈지도 모른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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