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경제민주화 입법이 마무리 단계라며 하반기 국정의 초점을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9월 정기국회에 대기 중인 법안들을 보면 경제민주화 입법은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다는 생각이 든다.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상임금 범위·근로시간 단축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금융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 기업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담은 상법 개정안 등 현안이 수두룩하다. 이런 경제민주화 관련법들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규제의 신설이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강력한 규제들을 숨 가쁘게 도입하니 경영 활동을 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경제5단체의 건의 내용을 보면 정치권의 무리한 입법에 기업이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잘 나타난다. 2015년 시행될 화평법의 경우 100㎏ 미만 소량 화학물질까지 등록을 의무화해 막대한 비용부담과 긴 등록절차로 인한 신제품 개발경쟁 낙오, 수출납기 지연 등의 타격을 예상했다. 또 매출액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매기도록 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으로 인해 기업이 한번의 실수로 폐업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통상임금의 경우 최대 38조원의 추가 부담을 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2조원의 합작투자를 실행할 수 있도록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조속히 개정하고 순환출자금지와 관련해서는 기업투자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해줄 것을 건의했다. 아울러 법인세 인상 신중 검토,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과세 제외 등도 주장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은 고용창출을 위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조성에 나서고 있다"며 "근로자보호도, 환경도 중요하고 경제민주화도 필요하지만 기업을 돕고 경제를 살리는 일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맞는 말이다. 한편으로 기업을 옥죄는 덩어리 규제를 만들어 내면서 다른 한편으로 기업 보고 경제살리기를 위해 투자하라고 한다면 이런 모순이 또 어디 있을까.
국회와 정부는 기업의 이런 호소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된다. 기업이 잔뜩 움츠러들고 아예 주저앉아 버린다면 경제는 누가 살리겠나. 경제민주화 입법은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강도와 속도로 해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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