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복지는 있을 수 없다. 복지공약을 재정수입에 맞추지 않으면 경제가 파탄이 날 것이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은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윤(尹)경제연구소에서 가진 본지와의 특별인터뷰에서
"줄어드는 세수에 따라 복지 지출을 조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현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론'을 고수할 경우 재정건전성이 심각한 도전을 받을 것이란 지적이다.
윤 전 장관은 또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현재까지 진행 중이란 분석을 내놓으며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발전 속도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와 관련해서는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부채상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그의 제언이다.
아울러 그는 소득격차 등 우리 사회의 양극화 해소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 등의 활동을 규제하는 형태가 아닌
이들의 투자 및 고용 창출을 통한 복지 수요 충족을 강조했다.
결국 일자리 창출이 최대의 복지란 설명이다. 다음은 윤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대담 = 조석장 정치경제부장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5년이 흘렀다. 현재 우리 사회는 위기에서 벗어났는가.
▲아직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 이전 상태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성장세가 그렇다. 소비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으며 투자도 회복이 안 되고 있다. 국제교역도 늘어나지 않아 조선, 해운 업종 등이 계속 어려운 것이다. 다만 하나의 예외가 주가다. 상당한 회복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신흥국들의 주가가 다 빠졌는데 우리나라 주식만 외국인들이 연일 사들이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2%대 저성장에 머물고 있는 만큼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미국의 출구전략이 본격화되면 신흥국의 금융위기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진단이다. 우리나라는 안전한가.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면 가장 우려되는 곳이 인도네시아와 터키, 브라질 등이다. 브라질은 자본 유출입에 따라서 환율이 등락을 거듭할 것이다. 인도네시아도 개발에 필요한 자금이 많이 소요되고 있어 위험신호를 느끼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처럼 굉장히 높게 평가되고 있다.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 경제와 맞물려 있는 신흥국이 어려워지면 그쪽에 대한 우리의 시장 확보도 어려워지므로 결코 낙관하면 안 된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어오면서 한국 경제는 어떠한 변화를 겪었나.
▲지난 1997년 말 IMF 외환위기 당시는 정권교체 시기와 맞물려 있어 조직개혁을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데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국제수지가 계속 적자였고 그 부분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외환보유액도 계속 줄어들고 단기외채가 많았다. 특히 기업들이 압축성장을 하면서 과잉투자를 하는 등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두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지금은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물론 국제수지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기본 펀더멘털이 달라진 것이다. 또한 올 초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스템도 갖춰져 있어 정치·경제적으로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저성장, 저소비, 높은 실업률 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뉴노멀(new-normal) 시대' 대응 방안은.
▲경제발전이 성숙단계에 가면 예전처럼 고속성장은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추세다. 다만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국, 즉 2050클럽(인구 5000만명과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동시 충족 국가)에 가세하기 위해서는 물적 토대를 갖춰야 한다. 또한 국민들의 각종 복지수요 등 기대에 맞추려면 조세 부담률 등이 2배 이상 늘어나야 하므로 저성장 기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데 막혀 있어 안타깝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산업의 화두로 떠오른 금융규제 움직임에 대해.
▲금융의 발전 속도와 확장의 폭이 실물경제와 상당한 괴리가 발생하면 문제가 생긴다. 그 차이를 놓고 인간의 탐욕 문제가 화제가 되고 '월가를 점령하라'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실물경제가 발전하는 속도와 금융이 늘어나는 속도의 밸런스가 맞아야 하는 데 격차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가 금융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자 금융거래세 도입에 관한 논의 등이 이뤄졌고 우리도 그중 일부를 받아들였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적으로는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 국내적으로는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 저소득층과의 격차 해소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 등의 활동을 억누르는 것이 아닌 저소득층 등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 즉 경제 운영은 감성적 접근이 아닌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결국은 개방과 경쟁이다.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전체적인 부의 규모를 키워야 하는 게 급선무다. 이러한 부는 국내 시장이 아닌 80% 이상이 해외 시장에서 이뤄지는 것이므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정부는 시장의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뚜렷한 기준을 세워서 철저히 감독하고 감시하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 및 본격적인 금리인상 시기는.
▲아마도 금년 연말쯤부터 시작해서 내년 중반 정도까지 양적완화를 축소해 나갈 것이다. 굉장히 느린 속도로 완만하게 할 것으로 본다.
전 세계 시장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할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금리도 내년에 논의가 될 것이다. 여러 가지 변수가 종합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금리다. 이제는 물가뿐 아니라 성장과 고용 부문에 있어서도 중앙은행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최근 일본이 그렇고 우리 중앙은행도 전통적 기능에 변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출구전략에 대비해 '거시건전성 3종 세트(선물환 포지션 제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 등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과거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2009년) 내가 마련했던 것이다. 정부도 환율과 주가 등 거시지표를 살피면서 단계별로 시나리오를 만들어 놨을 것이다. 다만 나중에 국제사회에서 급격한 자금흐름이 이뤄지고 투기자본이 들락거릴 소지가 보이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토빈세를 내부적으로 굉장히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한다. 다만 상당기간 거기까지는 안 갈 것으로 보인다. 1년 미만 단기 외채 비중이 30%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예전과 달리 우리의 기본 펀더멘털이 좋다.
―최근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 앞서 진단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펀더멘털이 좋아져서인가.
▲펀더멘털이 뒷받침되지 않고 자본시장의 유동성만 유입되면 이른바 '유동성 장세'로 거기에 거품이 끼는 것이다. 최근 외국인들이 투자를 늘리는 것은 우리나라가 환금성이 용이하고 자본 흐름의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신흥국에서 자본을 빼서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으로서는 주가가 오르면 여유가 생기고 대외적 신뢰도가 올라간다. 그러나 실물경제와의 괴리를 유의해야 한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올 경우 외환 건전성 부담금이 발동될 수도 있다.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책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참으로 어려운 시기다. 우리 경제가 세계 경제권에 편입된 지 오래됐기 때문에 세계 경제가 풀리지 않으면, 특히 우리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는 회복이 안 된다. 특히 제조업 중심으로 수출이 안 되니까 고용도 창출되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해 대선 국면을 맞이하면서 경제민주화가 떠올랐다. 그래서 경기를 회복시킬 것인가 하는 경기 진흥적 측면과 경제민주화를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한다는 대칭되는 모습 중간에 정부가 샌드위치처럼 끼여 있다. 여기에는 입법부인 국회가 같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부의 개념에 행정부와 입법부를 함께 전제해야 한다. 법적으로 제도상 권한이 국회로 다 가있다. 대표적으로 부동산대책을 두 번에 걸쳐 발표했는데 전부 법으로 되어 있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및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이 발목이 잡힌 것은 통탄할 일이다. 상속·증여세율도 낮추려고 했는데 부자감세라며 국회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다. 정부 정책과 입법 사이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정부도 일관된 메시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책의 방향성이 모호한 측면이 있다. 정부가 기업의 투자를 유인하면서도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경제민주화라고 해서 입법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은 시장경제에 어긋난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다. 이제는 경제정책의 방향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제한된 자원을 어디에 우선적으로 투자하고 배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성장을 통한 고용창출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일자리가 최대 복지다.
―현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증세 없이 복지 공약을 어떻게 하나. 세율 인상과 세목 신설만 증세고 비과세·감면 폐지 등은 증세가 아니라니 당황스럽다. 증세는 국민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나 안 나오나로 정의해야 한다. 이제는 복지공약을 재정수입에 맞춰야 한다. 재정을 복지공약에 맞추려고 하면 파탄 난다. 이대로 가면 재정건전성이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더욱이 경기 침체기에 증세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결국 줄어드는 세수에 따라 지출을 조정해야 한다.
―출구전략이 시작되면 우리나라도 기준금리 인상 등이 예상되는데, 이 경우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가 또 다른 위협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이나 정치권이 얘기하는 것처럼 여러 차례 정책적으로 부채를 탕감해주면 참담한 결과를 낳는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는 부채에 대한 자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부채를 일으킨 사람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져서는 안 된다. 결국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부채를 상환할 능력을 만들어주는 게 최대 해법이다.
―'현오석 경제팀'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금 상황은 제갈공명 둘이 와도 굿 솔루션(좋은 해결책)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기 몫만 챙기는 분열과 갈등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경제팀을 나무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각자 선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힘을 모아가야 한다. 경제팀을 흔들기 전에 뒤에서 서포트(지원)를 해줘야 한다. 경제부총리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특히 경제를 보는 시각이 같은 사람이 한 팀을 이뤄야 한다.
―부동산시장이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은.
▲부동산시장 문제는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동안은 모든 정책시스템이 부동산을 투기로 연결했지만 이제는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소유의 개념이 아닌 거주의 개념으로 변하고 있으며 1인 핵가족이 많아져서 대형아파트는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제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우선은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전환해야 한다. 과거 투기 수요를 억제하던 정책 패러다임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금융위기의 역풍으로 STX그룹의 강덕수 회장과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 등 재계의 '샐러리맨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유사 사태 방지를 위한 묘안은.
▲나름대로 중견기업을 넘어 대기업권으로 들어간 기업들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이후에 5년 이상 불황이 지속된 조선·해운·건설업의 경우 정부가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정책금융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배임이나 횡령을 했을 경우엔 가차없이 구조조정을 해야 하지만 기업활동에만 전념해온 강덕수 회장 같은 사람은 불황의 유탄을 맞은 격이기 때문에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김홍재 팀장 최경환 최갑천 홍창기 강재웅 김영권 김병용 김미희 박소연 기자
■윤증현 약력 △63세 △경남 마산 △서울고 △서울대 법대 △미국 위스콘신 대학원 △재무부 국제금융과장, 은행과장, 금융정책과장, 금융실명제실시준비단장, 세제실 심의관, 증권국장, 금융국장 △재정경제원 금융총괄심의관, 세제실장, 금융정책실장 △세무대학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김&장법률사무소 고문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기획재정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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