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면서 '총수 수난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이들 대기업 계열상장사의 주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까진 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 그룹의 최종 결정권한을 지닌 총수의 경영공백이 가져올 수 있는 리스크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15일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재(14일 종가기준) 국내 10대 계열 상장사 92개사의 시가총액 합은 713조4325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연초 기록한 시총 723조9440억원에 비해 1.45%가량 감소한 금액이다. 10조5114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허공으로 사라진 셈이다.
■'오너 리스크'에도 SK.한화↑
10대그룹 가운데 시가총액이 가장 많이 감소한 곳은 한진그룹이었다. 연초 5조4984억원에 달했던 한진그룹의 시총은 불과 10개월 보름여 만에 1조9218억원(34.95%)이 증발했다. 이어 GS그룹의 시총이 13조8314억원에서 11조7024억원으로 15.39% 줄어들었고, 포스코그룹 역시 39조217억원에서 34조4981억원으로 11.59% 감소했다. 이 밖에 LG그룹 시총이 76조8265억원에서 70조3408억원으로 8.44% 줄었고, 삼성그룹 시총도 327조1863억원에서 308조1373억원으로 5.82% 감소했다.
다만 이들 그룹 가운데 총수가 횡령·배임 혹은 분식회계로 인해 법의 심판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오히려 '오너 리스크'로 인해 시끌벅적했던 그룹의 상장사 주가는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최태원 회장이 450억원대 횡령 혐의로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SK그룹 계열사는 연초 이후 그룹의 시가총액이 69조7182억원에서 78조5312억원으로 오히려 8조8130억원(12.64%) 증가해 10대그룹 가운데 가장 높은 시총 상승률을 기록했다.
앞서 서울고법은 지난달 27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450억원대 횡령 혐의와 동생 최재원 부회장의 배임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해 최 회장에게 징역 4년, 최 부회장에게 징역 3년 6월을 각각 선고했다.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바 있는 김승연 회장의 한화그룹 역시 시총이 12조8119억원에서 13조308억원으로 2188억원가량(1.71%)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오너 리스크'와는 무관한 현대자동차(8.50%), 현대중공업(11.63%), 롯데(3.42%) 그룹 등의 시총이 크게 늘었다.
■"총수 없이 '더하고 빼기' 불가능"
다만 전문가들은 당장은 이들 총수의 경영공백이 주가에 드러나진 않지만, 향후 최종 의사결정 지휘봉을 쥐고 있는 선장이 없다는 점이 이들 그룹 주가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SK나 한화그룹의 경우 그동안 몸집을 줄이고 주력사업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키워왔다.
SK그룹은 지난해 1월 고속도로휴게업체인 하이웨이스타를 신설한 것을 시작으로 SK플래닛과 SK C&C가 각각 매드스마트와 텔스크 지분을 취득해 계열로 편입했고, 위례에너지서비스와 하남에너지서비스도 새로 설립했다. 올해에도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에스케이컨티넨탈이모션코리아, 화물보관 및 운송업체인 지허브, 화학제품판매업체인 에스케이트레이딩인터내셔널, 원유정제처리업체인 에스케이인천석유화학 등을 신설한 반면, SK마케팅앤컴퍼니, 엔카네트워크, 매드스마트 등을 흡수합병했다.
마찬가지로 시총이 늘어난 한화그룹 역시 그동안 '더하고 빼기'로 많은 조정을 단행했다. 민자역사건설운영업체인 한화청량리역사를 흡수합병했고 한화투자증권(옛 푸르덴셜증권), 군장열병합발전, 한화나노텍 등을 합병했다.
부동산업체인 예산테크노밸리는 청산됐고 발전전기업과 전기자재판매업체인 이글스에너지는 지분매각으로 계열에서 제외됐다. 더불어 한화건설은 환경오염방지시설업체인 에코이앤오를 신설했고, 한화솔라에너지는 태양광발전업체인 하이패스태양광을 새로 설립했다.한 증권사 지주사 담당 연구원은 "당장 SK그룹은 투자금이 1조원에 달하는 매물을 총수의 결단 없인 진행할 수 없어 석탄발전회사인 STX에너지 인수를 포기했다"며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한국 경제에서 '오너 경영'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수의 경영 공백은 기업경영 위축과 투자철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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