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성(전남)=송동근 레저전문기자】중국 사람들은 흔히 "일생 동안 매일 다른 차를 마셔도 모두 마셔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차의 종류가 많다는 얘기다. 차 중에 가장 대표적인 차를 꼽는다면 역시 녹차가 아닐까. 언제나 쉽게 마실 수 있는 녹차는 하루 2~3잔을 마셨을 때 혈액에 흡수되는 녹차의 떫은 맛(EGCG·에피가로카데킨가레트)이 암세포의 증식력을 절반으로 떨어뜨린다는 일본 규슈대학 연구팀의 임상 결과가 있다. 이런 녹차의 국내 주산지인 '녹차수도' 전남 보성의 차밭(茶園)은 최근 몇 년 사이 커피 등 각종 음료에 밀려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전국 녹차 생산량의 37% 이상을 차지하고 차밭을 구경하기 위해 찾는 관광객이 연간 400만명에 달해 관광 측면에서는 여전히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번 주 '한국관광 100선'이 찾은 곳은 구불구불 기다랗게 백색의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겨울 풍경을 선사하는 전남 '보성차밭'이다.
■보배로운 곳, 보성의 녹차밭
먼 산 아래 굽이굽이 펼쳐지는 차밭이 득량만의 싱그러운 바다를 아우르며 온 산을 뒤덮고 있다. 마치 새하얀 비단 물결인 듯, 여름철에는 그린 카펫을 깔아놓은 듯, 아니면 잘 다듬어진 정원 모양 같다고나 할까.
보성차밭(대한다원)이 자리한 보성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차밭과 함께 본래부터 한국차의 명산지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한반도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바다와 가깝고 날씨가 연중 따뜻해 차 재배지로 매우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차밭 면적도 약 500만㎡(약 150만평)에 달해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내륙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차의 품질 또한 국내 제일로 꼽힌다.
보성차밭은 지난 1939년 사람의 손으로 차밭을 일구기 시작한 이래 1960년대부터 대규모 차밭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한때 재배면적이 660만㎡가 넘었다. 하지만 이후 국내 차산업이 점차 부진해진 탓으로 계속 차밭이 줄고 있는 추세다. 그래도 보성은 여전히 국내에서 가장 많은 차가 재배되고 있고 대부분 산비탈을 개간해 조성한 차밭이어서 그 맛과 향이 야생차에 비해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다. 야생차 역시 양이 예전보다 줄기는 했지만 현재도 3만㎡가 넘는 야생 차밭이 있어 고급 명차의 고장이라 할 만하다. 차는 밭의 물빠짐이 좋고 밤과 낮의 온도차가 크며 안개가 많은 곳에서 생산된 것이 색과 맛 그리고 향이 뛰어나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성 지방의 기후는 좋은 차를 생산하기에 더없는 천혜의 자연 조건이 되고 있다.
■곡우에 딴 차, 향과 맛 가장 좋아
옛 문헌을 살펴보면 차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 사신으로 간 김대렴에 의해서라고 전해진다. 차 문화가 가장 꽃피었던 중흥기는 고려시대로 당시 왕족과 승려는 물론 민간에까지 차문화가 널리 보급돼 팔관회나 왕세자 책봉식 등 국가 행사 때마다 차를 올리는 의식을 행할 정도였다.
차를 따는 시기는 해마다 4월 20일인 곡우(穀雨)를 전후해 따는데 그때 딴 차가 향이 가장 좋고 감칠맛이 뛰어나 우전차(雨前茶)라 부른다. 또 5월 4일께 입하 때 채취한 차를 세작, 그 다음이 중작, 대작이라 하는데 고급차는 입맛에 좋고 저급차는 몸에 좋기 때문에 굳이 차를 가려 마실 필요는 없다고 한다.
녹차는 머리가 맑아지고 눈과 귀가 밝아지는 효과를 낳을 뿐 아니라 소화를 도와 신지대사를 좋게 한다. 특히 폴리페놀과 비타민C의 함량이 많아 항암, 항산화효과,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등의 질병에 매우 유익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녹차를 '몸에 좋은 세계의 10대 음식'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세계 놀라운 풍경 31선'에 선정
보성군은 차의 본고장으로서 지난 1985년부터 매년 5월 10일이면 전국적인 차문화 행사인 '다향제(茶鄕祭)'를 열어 다신제(茶神祭), 찻잎 따기, 차 만들기 등을 펼친다.
아울러 전국 유일의 해수녹차.온천탕 개발과 함께 차의 다양화, 실용화를 위해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찻잎을 먹인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상품화 등 차를 주제로 한 음식 개발을 통해 차고을(茶鄕)의 위상과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이런 노력에 부응하듯 미국 CNN은 지난 9월 미국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등 전 세계 각지의 뛰어난 풍경 31곳을 소개하는 '세계의 놀라운 풍경 31선'에서 보성차밭을 12번째로 선정하기도 했다.
보성에서 다향과 함께 그림처럼 아름다운 차밭을 둘러보고 나면 아늑한 곳에서 따뜻한 차 한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투명한 물색과 찻잎의 싱그러운 향이 어우러진 녹차맛이 일품이다.
보성차밭에 이어 돌아볼 만한 곳으로는 전국 3대 명품 해변인 율포 솔밭해변, 녹차수도 보성을 엿볼 수 있는 한국차 박물관,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등이 있다.
■녹차밭의 겨울밤, 빛으로 물들다
보성차밭이 위치한 전남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에서는 오는 13일부터 깊어가는 겨울밤을 빛으로 물들인다.
이번 보성차밭 빛축제는 올해 11회째로 첫날 점등식을 시작으로 내년 2월 2일까지 52일간 차밭을 빛으로 수놓을 예정이다.
보성차밭에는 새해 희망을 기원하는 대형 트리가 불을 밝히고 트리는 말의 해를 맞아 말이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와 함께 은하수터널을 비롯해 봇재~다향각 경관조명, 테마거리, 빛의 거리, 포토존, 다짐의 계단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된다. 소망카드 달기 체험행사 및 매주 말 상설공연도 진행돼 연말연시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따뜻하고 낭만적인 겨울 축제를 즐길 수 있을 전망이다. 아울러 지난 2000년 밀레니엄 트리로 기네스북에도 등록된 차밭 대형 트리는 높이 120m, 폭 130m 규모로 차와 소리의 고장을 알리고 보성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는 콘셉트로 꾸며졌다. 형형색색의 은하수 전구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이용해 마치 눈꽃이 내리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는 관람객을 겨울 낭만에 푹 빠져들게 할 듯하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대형 트리를 대형 연하장으로 형상화했고 도로변에는 솟대와 만장, 주말 상설공연 및 연하 엽서 보내기, 캔 트리 쌓기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선보인다.
특히 보성군은 올겨울 정부의 에너지 절감 방침에 맞춰 기존의 일반전구를 LED 전구로 교체, 예년 전력 사용량의 7분의 1 수준 이하로 낮추고 친환경 재활용 기자재를 사용해 은은한 보성의 빛을 연출할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연말연시에 보성을 찾는 많은 여행객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보성차밭 빛 축제를 준비했다"면서 "스쳐가는 관광이 아닌 머물면서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dksong@fnnews.com 송동근 레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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