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현장르포] 자동차의 산 역사 디트로이트 디어본 ‘포드 박물관’ 가보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1.23 17:05

수정 2014.10.30 04:26

미국 디트로이트 인근에 위치한 중소도시 디어본에는 미국 자동차산업을 일군 포드 왕국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연간 관람객이 100만명에 육박하는 포드 자동차박물관은 대표적인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다. 포드는 자동차뿐 아니라 농기계, 금속세공품 등 생활 전반에 관련된 물건이 총 망라돼 있다. 관람객들이 전시 차량을 둘러보고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 인근에 위치한 중소도시 디어본에는 미국 자동차산업을 일군 포드 왕국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연간 관람객이 100만명에 육박하는 포드 자동차박물관은 대표적인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다. 포드는 자동차뿐 아니라 농기계, 금속세공품 등 생활 전반에 관련된 물건이 총 망라돼 있다. 관람객들이 전시 차량을 둘러보고 있다.

【 디어본(미국)=김병용 기자】'모터 시티'로 불리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차량으로 30분가량 이동하면 조용한 중소도시인 디어본이 나온다. 이곳엔 미국 자동차산업을 일군 포드 왕국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포드 본사와 연구개발(R&D)센터 외에도 미국 자동차산업의 과거 영광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포드 자동차박물관'과 '그린필드빌리지' 등이 대표적이다. 노년의 포드가 직접 고향인 디어본의 33만578㎡(10만평) 부지에 500만달러를 들여 설립한 그린필드빌리지에는 전통적인 미국 농촌의 모습이 재현돼 있다. 우리의 민속촌 마을과 유사하다.
그린필드빌리지와 마주 서 있는 곳에는 연간 관람객이 100만명에 육박하는 포드 자동차박물관이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기자가 포드 자동차박물관을 찾았을 때는 오전부터 내린 눈이 수북이 쌓여 차들이 엉금엉금 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박물관 안엔 적지 않은 수의 관람객들이 자동차 역사의 대명사이자 가장 위대한 인물인 헨리 포드(1836~1947)의 혁신적인 삶과 그의 열정을 곱씹어 보고 있었다.

4만9587㎡(1만5000평) 규모의 포드 자동차박물관엔 미국의 생활문화가 자동차와 함께 발달해 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일반 승용차, 마차, 기차, 자전거, 비행기 등 다양한 이동수단을 비롯해 주방기구, 농기계, 금속세공품, 전자제품 등 생활 전반에 관련된 물건이 총 망라돼 있다. 전시된 상당수 물건이 포드가 직접 수집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 디트로이트 인근 디어본에 위치한 포드 자동차박물관에 전시된 포드사의 1920년대 인기 모델 'T' 투어링카. T는 전 세계인들에게 '티(깡통) 리지'란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미국 디트로이트 인근 디어본에 위치한 포드 자동차박물관에 전시된 포드사의 1920년대 인기 모델 'T' 투어링카. T는 전 세계인들에게 '티(깡통) 리지'란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유독 끄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박물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혁신적 가치 공간'이다. 이 전시실은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 온 포드의 삶이 요약된 곳이다. 그의 일생과 관련된 자료 외에도 호기심의 만족과정, 자동차에서 시작해 엔진, 발전기 등 중공업으로 발전해 간 삶의 모습들이 잘 정리돼 있다.

사실 포드는 자동차를 발명하거나 현재 자동차산업의 효시로 불리는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분업 시스템을 개발한 인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포드가 '자동차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는 새로운 생산 방식을 창출하는 동시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자동차산업에 접목했기 때문이다.

도살장의 해체라인을 자동차 조립라인으로 바꾼 것은 포드의 천재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 차례나 자동차회사를 설립했다가 실패한 포드는 1907년 시카고의 한 가축 도살장을 우연히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선 위쪽에 설치된 이동활차를 통해 가축의 고기가 이동하고 인부들은 가만히 서서 고기를 자르고 있었다.

정육 과정을 지켜보던 포드의 머릿속에는 빛이 번쩍 거렸다. '움직이는 조립라인을 만들면 시간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 것이다. 포드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도살장의 아이디어를 자동차 공장에 실험했다.

포드는 먼저 엔진의 자석발전기 생산에 컨베이어벨트를 도입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1개에 18분 걸리던 제조시간이 5분으로 단축됐다. 자신감을 얻은 포드는 컨베이어벨트의 성능을 개선해 적용 범위를 늘렸다. 1913년 포드사가 차체를 제작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30분. 이는 경쟁사 대비 10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생산성 향상은 자연스럽게 가격경쟁력을 키웠다. 경쟁사 제품이 2000달러를 호가할 때 포드사의 인기 모델 'T'값은 260달러에 불과했다. 포드가 1927년 하이랜드파크공장을 디어본으로 옮겼을 때 1500만대의 모델 T가 도로 위를 달렸다. 세계 자동차의 절반이 포드사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포드가 고안한 생산 방식은 다른 회사로, 다른 산업으로 전파됐다. 자동차산업은 철강, 고무, 석유, 도로건설 등의 수많은 연관 산업을 발달시켰다.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산업혁명의 발원지인 영국을 제치고 20세기 패자가 됐다. 포디즘으로 대표되는 분업화 생산체제가 미국을 비롯해 각국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킨 것이다.

포드가 '최초의 20세기인'이자 '20세기의 빌 게이츠 혹은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이유다. 포드 스스로도 "내가 현대를 열었다"고 했을 정도로 그가 20세기 산업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그의 혁신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정신은 오늘날 포드 경영이념에도 고스란히 전수되고 있다.

앨런 멀랠리 최고경영자(CEO) 역시 지난 14일(현지시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포드사가 수많은 도산 위기를 극복하고 설립된 지 100여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세계 자동차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남아 있는 비결은 "업체 간 경쟁을 통한 끊임없는 혁신의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포드 자동차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두 개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담겨 있는 시멘트 석고 형태의 조각이 놓여 있다. 포드와 그의 멘토이자 평생 지기였던 토머스 에디슨이 포드사의 디어본 루지공장 설립을 위한 첫삽을 뜨다 남긴 족적이다.
자동차산업 발전에 공헌한 포드의 영감처럼 한 세기가 지났음에도 그의 발자국은 선명했다.

ironman1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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