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마데우스'의 원작자로 유명한 극작가 피터 셰퍼(88), 칠레 독재정권에 항거해 날 선 펜을 휘둘렀던 아리엘 도르프만(71). 두 사람의 희곡은 세계 연극사에서 빛나는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이들의 묵직한 연극 두편이 동시에 무대를 꿰찬다. 인간의 존재론적 물음, 역사의 생생한 기록, 무대서 마주하게 될 주제다.
피터 셰퍼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 '에쿠우스'가 국내 초연된 건 1975년, 극단 실험극장의 무대를 통해서였다. '에쿠우스'를 통해 배우 강태기,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조재현 등이 전국구 스타로 부상했고, 작품은 수많은 남성 연기자의 로망이 됐다.
극은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가 말 8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의 정신적 비밀을 캐내는 과정을 그린다. 17세 소년 앨런의 이 야만적 행위의 근원을 따지면서 소년의 뜨거운 내면을 보게 된다. 엄격한 금욕주의자인 아버지, 광신도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앨런은 혈관이 불쑥 튀어나온 근육질의 말에게서 완벽한 자유와 원시적 야성미를 느끼고 있었다.
앨런의 행위는 위선적 금욕주의와 맹목적 광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투쟁의 결과였음을 다이사트는 깨닫는다. 셰퍼는 신분과 연령을 초월한 주인공들의 격론을 통해 현대인의 교양과 문명의 허위성을 폭로한다. 진정한 인류의 구원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이번 '에쿠우스'는 극단 실험극장이 선보이는 4년 만의 재공연이다. 예전보다 노출 장면이 과감하고 광기와 이성의 대립이 적나라하다. 원작에 충실한 파격적인 무대는 관람 연령을 19세 이상으로 한정했다. '에쿠우스'가 19금(禁) 공연으로 올려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안석환과 김태훈이 다이사트로, 지현준과 전박찬이 앨런 역을 맡는다. 공연은 3월 14일부터 5월 17일까지 서울 장충동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전석 4만원.
칠레 출신 아리엘 도르프만은 칠레 현대사의 정치적 좌절, 그로 인한 대중의 고통에 천착해온 극작가다. 문학이 여전히 삶과 현실의 진실한 반영이라고 믿고 있다. 1990년 피노체트 독재정권이 권력을 잡았던 칠레는 17년 동안 정부 공식통계로만 살해된 사람이 3000명이 넘었다. 대표작 '과부들'은 강물을 따라 마을로 떠내려오는 썩은 시체들을 무대 위로 불러들인다.
고문으로 인해 살해된 남자들이 부패한 상태로 강으로 떠내려오면 과부들이 하나둘 모여 서로 자기 남편이라고 우긴다. 이는 이 시체의 정체를 밝히려면 살인자가 누구인지 파고들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싫어 신원불명으로 처리하려는 군부에 대한 항거였다. 작품은 독재정권으로 행복을 잃은 사람들의 애환과 죽음보다 못한 삶을 그린다.
2년 전 연출가 이성열이 이끄는 극단 백수광부가 국내 초연한 작품으로 원작은 1997년작이다. 민간극단이 1억5000만원을 들여 단독 제작해 화제가 됐고, 3시간 분량의 대작인 이 작품의 묵직함을 과감없이 전하면서 그해 평단으로부터 최고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배우 예수정 등 초연 멤버들이 대부분 다시 무대에 선다. 공연은 3월 14일부터 23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전석 2만~5만원.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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