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7년 시댁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A씨(31)는 아들이 돌이 될 무렵인 2009년 1월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연히 집안일에 소홀해졌다. 집이 지저분하고 냉장고 안의 음식이 썩는 일이 빈번해지자 시어머니의 핀잔이 시작됐다. A씨는 얼마 후 분가했지만 시어머니가 찾아와 살림에 간섭하며 잔소리와 폭언을 일삼았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감정 표현이 서툰 A씨는 그때마다 말 없이 혼자 울거나 친정에 하소연하며 참았다. 그런데 2010년 1월 설을 앞두고 다시 시댁으로 들어간 A씨의 시집살이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고부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A씨는 우울증까지 얻었다. 참다 못한 A씨는 결국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직장 동료와 4년여 연애 끝에 지난 1984년 결혼한 B씨(49)는 신혼 초부터 남편과 갈등이 잦았다. 남편이 시댁 식구에게 잘하는 만큼 처가 식구에게도 잘해주길 바랐지만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명절만 되면 시댁과 친정에서 며칠씩 머물러야 하는지를 놓고 다퉜다. B씨는 시댁을 찾을 때마다 시댁 식구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남편은 B씨가 시댁 식구들을 일부러 멀리한다고 생각하면서 다툼이 반복됐다. 이 부부는 2005년부터 아예 '쇼윈도 부부'가 됐다. 그러다 2009년 9월 추석 때 시댁에서 곪은 상처가 터졌다. 화가 난 남편이 술에 취해 B씨를 비난했고 다음날 처가에서도 장모 앞에서 B씨를 욕했다. 결국 B씨는 이혼소송을 냈다.
'시(媤)자가 들어간 사람들의 세상'이라는 뜻으로 '시월드'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명절만 되면 시댁과 친정을 둘러싼 부부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이혼소송으로 이어지는 '명절스트레스 증후군'도 확산되고 있다.
이런 경우 법원은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경향이다.
2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이혼 통계를 분석한 결과 설과 추석 등 명절 직후인 2~3월과 10~11월의 이혼건수가 전달에 비해 평균 11.5% 많다. 그렇다면 명절스트레스에 따른 이혼소송에서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릴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단독(서형주 판사)은 A씨가 남편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친권자·양육자를 남편으로 지정, A씨가 남편에게 매월 2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가 직장생활과 가사·양육을 병행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이 지속됐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노력도 하지 않고 먼저 집을 나가 파탄에 이른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남편은 직장생활·가사·육아에다 시어머니와 갈등까지 겪어 힘든 A씨를 위로해주어야 하는데도 이를 방관해 애정과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쌍방에 대등한 책임이 있는 만큼 재판부는 A씨의 위자료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B씨가 남편을 상대로 낸 소송을 심리한 같은 법원 가사4부(한숙희 부장판사)는 B씨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면서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남편이 B씨에게 위자료 1500만원을 지급하고 재산분할 비율은 50%로 정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둘 사이 혼인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특히 "남편이 B씨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중심적인 태도만 고집하고 B씨를 무시했다"고 판단했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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