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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도시재생이다] (1) 60년 수명 다한 담배공장.. 이젠 ‘예술 둥지’로 변신

최경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2.16 17:11

수정 2014.10.29 17:51

1960~1970년대 연간 100억개비의 담배를 생산했던 충북 청주 연초제조창의 화려한 날은 가고 지금은 칠이 벗겨진 황량한 건물만 남았다. 그러나 수십동의 건물과 13만㎡의 부지는 혐오시설이라는 오명을 씻고 도시문화시설로 재탄생을 앞두고 있다.
1960~1970년대 연간 100억개비의 담배를 생산했던 충북 청주 연초제조창의 화려한 날은 가고 지금은 칠이 벗겨진 황량한 건물만 남았다. 그러나 수십동의 건물과 13만㎡의 부지는 혐오시설이라는 오명을 씻고 도시문화시설로 재탄생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11년 가을 일곱번째를 맞은 충북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행사장으로 의외의 장소가 결정됐다. 청주 연초제조창, 바로 담배공장이었다. 그것도 2004년 완전 폐창돼 7년 동안 도시의 흉물로 방치됐던 폐공장이었다. 우려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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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2월 초순 청주 연초제조창은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공장건물들은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채 재탄생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터라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주변엔 아직도 낮은 건물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동네라서 육중한 제조창 건물은 멀리서도 한눈에 띄었다. 멸망한 왕조의 유물을 연상시키는 폐건물과 도심에 우뚝 솟은 굴뚝은 이곳이 한때 국내 최대의 담배공장이었음을 묵묵히 시위하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가로세로 9m 간격으로 늘어선 사각 기둥이 눈에 띈다. 대형 트럭과 지게차 같은 중장비들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천장도 6m40㎝ 높이다. 시가 이곳을 공연 전시 시설로 사용할 생각을 한 것도 요즘 건물이 갖고 있지 않은 층고와 넓이, 또 200m가 넘는 긴 회랑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에 열린 비엔날레가 끝난 지 얼마 안돼 아직도 곳곳에 보라색의 안내표시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전시됐던 작품들은 모두 철수된 상태다. 상설전시를 하려면 관리비용과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청주시의 재정형편으로는 꿈 같은 이야기다.

옛 건물 중 하나인 원료창고는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로 리모델링돼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옛 건물 중 하나인 원료창고는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로 리모델링돼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담배공장의 추억

이 공장은 1999년 폐쇄가 결정된 이후 규모가 점차 줄어 2004년 완전 폐창됐다. 주민들의 민원도 끊이지 않았다. 흉물스러운 건물을 쓸어버리고 아파트를 짓자는 여론도 있었다. 실제 아파트를 짓겠다는 개발계획이 여러번 시에 제출됐다. 그때마다 청주시 도시계획위원회는 계획을 모두 반려했다. 지역 시민단체와 상당수 시민들도 이 공장을 완전히 없애버리자는 데는 동의할 수 없었다. 연초제조창에는 청주시민들의 삶이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청주연초제조창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문을 열었다. 충북지역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잎담배 산지였기 때문에 원료생산과 가공, 제조시설을 이곳에 집적한 것이다. 이후 담배산업이 성장하면서 한때 3000명의 근로자가 근무했고 연간 100억개비의 담배를 생산, 17개국에 수출했다.

국내에 변변한 제조시설이 없던 1960~1970년대엔 핵심 산업시설이었다. 아직도 이곳 어르신들은 연초제조창 월급날이면 청주시내가 들썩였다고 말하면서 향수에 젖곤 한다. 담배 찌는 냄새가 온 도시에 퍼져 나갔고 공장 주변 동네에서는 빨래를 말리다보면 담배 증기에 누렇게 옷감이 변하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도 공장 내부를 둘러 보면 긴 회랑의 한쪽 벽에 여러개의 육중한 철문들을 볼 수 있는데 입구엔 몇호 훈증실이라는 푯말이 아직도 남아 있다. 높은 굴뚝이 있는 이 건물에서 잎담배를 쪄서 옆 건물에 있는 제조공장으로 넘겼다. 복도 끝 넓은 창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긴 회랑을 비추면 훈증실과 철문, 기둥, 천장에 붙은 전등들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독특한 음영을 연출해 낸다.

각 훈증실은 대형 트럭 한 대가 넉넉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방이다. 비엔날레 행사가 열릴 때 이곳 훈증실 한곳한곳을 각 작가들에게 배정해 개인 전시 공간으로 활용했다.

불꺼진 담배공장이 예술로 재탄생하자 세계적 문화공간이 됐다. 지난해 열린 비엔날레엔 세계 65개국에서 3000여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유례없는 성황을 이뤄 대중적으로도 성공했다. 각국 미술 전문가들도 관심을 끌었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해외 유명 패션잡지 보그에서 사진촬영 장소로 이용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고 육영수 여사가 1966년 충북 청주 연초제조창을 방문해 기념식수한 것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청주 연초제조창의 전성기를 증언하는 유물이지만 하마터면 산업폐기물로 버려질 뻔했다. 기념식수한 나무는 제조창이 폐창되는 과정에서 KT&G가 매각한 다른 고목들과 함께 어딘가로 팔려 나갔는지 소재를 알 길이 없다. 사진=fn캐스트 박동신
고 육영수 여사가 1966년 충북 청주 연초제조창을 방문해 기념식수한 것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청주 연초제조창의 전성기를 증언하는 유물이지만 하마터면 산업폐기물로 버려질 뻔했다. 기념식수한 나무는 제조창이 폐창되는 과정에서 KT&G가 매각한 다른 고목들과 함께 어딘가로 팔려 나갔는지 소재를 알 길이 없다. 사진=fn캐스트 박동신


■폐공장에 예술이 둥지를 틀다

연초제조창은 과거 국내 최대 규모의 담배공장에서 세계적인 문화예술 시설로 탈바꿈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공장과 창고 등 10여채의 건물들과 13만㎡의 부지, 12만㎡의 건물을 예술테마파크로 꾸미기로 했다. 옛 원료창고로 쓰이던 건물 한동은 이미 리모델링해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로 쓰고 있다. 여기서 담배공장의 변신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했다.

담배제조의 첫 공정이었던 원료가공에 쓰인 문화산업단지 건물은 길이가 200m에 이르고 긴 복도를 통해 각 방들이 연결돼 있는 구조다. 이곳에 현재는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에듀테인먼트 시설과 78개의 문화콘텐츠 벤처업체가 입주해 있다. 문화의 생산과 소비를 한자리에서 구현한 장소다. 에듀테인먼트 시설은 입장료 수입으로 흑자를 내고 있고 벤처업체들은 작년 73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일자리도 500개가 만들어 졌다.

교육콘텐츠 업체 픽셀즈의 신창훈 대표는 "에듀테인먼트 분야의 집적시설로는 이곳이 전국에서 최고"라며 "유사한 업종의 다른 기업들과 함께 입주해 있기 때문에 컨소시엄이나 연계사업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연초제조창의 건물 단 1동을 리모델링함으로써 거둔 이 같은 성공은 앞으로 전체 13만㎡ 부지를 재생시키는 데 본보기가 된다.

담배를 제조하던 공장 건물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들어오기로 결정됐다. 또 훈증실이 있던 원료 가공공장에는 비엔날레 상설전시장과 부띠크호텔, 하늘공원, 수공업 센터들이 들어선다. 창고와 주변마을도 시민예술촌, 문화예술 도시로 꾸며나갈 계획이다.

안종철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은 "1970~1980년대 제조업이 융성했던 시절의 건물을 없애는 것보다는 재활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트렌드"라며 "제조업이라는 물질적 유산을 예술이라는 정신과 문화로 이어가는 데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젠 도시재생이다] (1) 60년 수명 다한 담배공장.. 이젠 ‘예술 둥지’로 변신


■육 여사의 기념식수도 사라져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60~1970년대 청주공장의 전성기를 알려줄 유물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공장을 철거하면서 당시 기계시설과 집기, 수십년된 수목들도 모두 반출됐다.

청주 연초제조창은 당시엔 국내 최대 담배 제조시설이었기 때문에 역사적 의미도 크다. 1966년엔 고 육영수 여사가 공장을 방문해 기념식수를 할 정도로 국가적으로도 큰 의미를 뒀다. 그런데 이 기념식수마저 유실되고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KT&G가 공장 내 수목들 중 수령이 오래되고 수형이 좋은 나무들을 캐내 매각한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팔려 나갔거나 관리소홀로 유실됐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육 여사의 기념식수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나중에야 알려졌다. 청주시는 KT&G로부터 공장부지를 매입한 뒤 지난해 정문 주변을 정비했다. 과거 경비실을 헐어내고 잔디밭도 다시 가꿨다. 당시 공사를 지켜보던 재단의 안승현 팀장은 포클레인 삽날에 이리저리 치이던 작은 비석 모양의 돌덩이 하나를 발견했다. 조경석으로 보이지는 않아 안 팀장은 폐기물과 함께 버려지려던 것을 청주시에 보관해 두었다.

어느날 흐릿한 글씨가 보여 햇빛에 비춰보니 앞면에 '육영수 여사 기념식수', 뒷면에는 '서기 1966년 11월 12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날은 충북예술제에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참석했던 날이다.
충북 옥천이 고향인 육 여사는 이날 축사도 직접했고 행사 뒤에 지역경제의 버팀목인 연초제조창을 방문했던 것이다.

청주시는 육 여사의 비석처럼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유물들을 모아서 연초제조창의 과거 역사를 재현할 계획도 갖고 있다.
과거 산업시설과 당시로선 수출 효자산업이었던 담배제조과정도 재현할 생각인데 원하는 옛 장비와 소품들을 구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탐사보도팀 최경환 팀장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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